안창홍 '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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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과 나, 그리고 작품 2016/02/21
대동문화 2016,1월호

아트라이프 - 안창홍 화백


글 은미희 사진 최옥수

예술은 뭘까. 예술의 소임은 무엇이고, 이 시대에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다시 말해 예술은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어떻게 인간을 위로하며, 어떻게 인간을 고발해야 할까. 이 근원적인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는 없다. 그 질문은 예술작품을 대할 때마다 조명 뒤에 숨어 우리에게 묻고, 또 묻는다.
안창홍 화백(63)의 작품은 그런 예술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다시 던진다. 정말, 예술이 자본에 휘둘려 그 순수함을 잃을 때, 예술은 어떻게 본질을 지키고,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전달해야 할까. 그것은 예술가들에게 던져진 숙제다.
그 휘황한 자본의 광휘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일. 예술가의 소임을 지키며 나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는 않는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구도의 고독함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창홍 화백의 그림은 이쁘고, 아름답기보다는 무언가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다.
"미화되지 않고, 포장되지 않은 우리 삶의 민낯이자 진실의 모습이지요.”
화백의 말처럼 그의 작품들은 포장되지 않은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담고 있다. 하지만 어찌 그게 끔직하고 불편할까. 이쁘고 아름다운 것의 기준은 보는 이와, 그 속에 담긴 진실의 무게에 달라질 터. 그런 의미에서 안창홍 화백의 작품은 아름답다. 아름다움을 넘어 멋지다.
그 진실과의 대면과 조우가 참으로 애틋하다. 게다가 단순히 보여 지는 것으로써의 멋지고 좋은 것을 넘어 안창홍 화백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이 사회와 사람들에게서 더 웅숭깊은 가치를 획득한다. 작품들 속에서 작가의 태도는 일관되게 진실되고 강직하며 인간의 감추어진 내면의 욕망을 추적한다.
‘똥’으로 인간사회의 권력과 물욕을 조롱하거나 일갈하고, ‘건달’을 통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자본주의를 환기시킨다. 또 ‘위험한 놀이’ 연작과 ‘새’ 연작을 통해 뒤틀린 욕망과 권력을 경계하고, ‘가족사진’ 시리즈를 통해 가족의 의미와 함께 삶과 죽음에 대해 천착한다. 왜 화백은 그렇듯 줄기차게 인간내면을 탐구하고,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까.
“회화를 넘어서 예술의 본질은 저항입니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것들에 대한 저항도 될 수 있고, 예술사적인 저항도 될 수 있고, 시대의 환경에 대한 저항이 될 수도 있지요. 또 어느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은 자유정신일 수도 있구요. 저뿐만 아니라 예술은 그렇게 끊임없는 저항정신과 자유정신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작가정신이지요.”
그이의 말처럼 그의 작품 대부분이 인간에 대해 주목하고, 시대를 담보하고 있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뒤틀린 욕망과 어떠한 폭력에도 꺾이지 않는 용기 사이에서 안창홍 화백의 작품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제 작품은 정치적이지 않습니다. 시대를 담고 있지만 정치적이기 보다는 더 근본적인 것에 주목합니다. 바로 사람에 대한 탐구이자 그들의 욕망에 관한 성찰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화백은 더없는 휴머니스트이다. 사람을 모든 것들의 위에 놓는 것. 화백이 해온 작품을 시기별로 나눈다면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십대의 ‘인간이후 시리즈’와 ‘위험한 놀이 시리즈’, 삼십대 이후의 ‘새’ 연작과 ‘가족사진 시리즈’, 최근에는 자연에 시선을 둔 ‘맨드라미 시리즈’가 그것이다.
‘위험한 놀이’ 시리즈는 병정놀이 같은 아이들의 놀이를 통해 성인들의 위험한 욕망을 추적하고 있고, 삼십대에 들어서는 ‘새’ 연작과 가족사진 시리즈에 골몰했다. 날개가 꺾여 날지 못하는 새와,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도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어미새 같은 새 연작 시리즈는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기에 그래도 희망을 불씨를 지피고,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는 화백의 의지가 담겨있다. 화백은 자신의 작품세계의 큰 주제를 ‘아리랑시리즈’라 부른다.
어느 예술가든 그러지 않을까마는 특히 안창홍 화백은 철저히 예술의 순정함을 위해 자신을 지키고 헌신한다. 자본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며, 자신이 속해있는 세상의 평화를 누구보다 소원하며 예술의 본령을 지키는 사람. 그 어느 것과도 타협하지 않는 그에게서 날선 가시가 느껴지지만, 아니다. 그에게서 그런 날선 가시보다는 올곧지만 부드러운 감성이 느껴진다.
화백이 꿈을 키우고, 청년시절을 보냈던 시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엄혹한 시절이었다. 군부독재와 자유를 갈망하는 염원이 서로 충돌하면서 세상이 뒤숭숭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화백의 자유에 대한 열정과 의지는 더 견고해지고,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그것들을 작품으로 담아냈다. 그렇게 화백은 어떤 구조적인 폭력에도 살아남았고, 화가로서 성공하기도 했다.
“저는 어떤 억압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고자 한 길은 화가로서의 삶이고, 세상에 대해 발언하고 싶은 것도 조형적 언어입니다. 화가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조형적 세계를 발전시켜 나가고, 그 작품으로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어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흔들림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오고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안창홍 화백. 화백의 성장시절을 살펴보면 얼마쯤은 그런 화백을 이해할 수가 있다. 아니 타고난 화백의 본성이 그랬을 것이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홀로 독립했습니다. 먹을 것, 잠자는 것, 등록금까지 혼자 다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혹독한 가난 속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쳤습니다. 대학진학은 포기했지요. 대학진학을 포기한 건 나만의 작품세계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도권에 함몰돼 나만의 작품세계를 잃을까 저어됐습니다.”
어쩌면 그 결단은 모험이고 도박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치의 머뭇거림이나 망설임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에도 홀로 미술실에 머물며 그림을 그릴 만큼 화가에게 그림은 따듯한 도피처이자 사랑이며, 곧 자기 자신이었다.
누구보다 혹독한 가난을 겪었으면서도 화백은 자본과 결탁하지 않고, 자본에 종속되지 않으며, 자본의 휘황한 광휘에 눈멀지 않았다. 한 번도 그것들을 잡기 위해 고심해본 적이 없었다. 예술에 대해 순정을 지키는 것. 그 순정은 지금도 그대로이다.
제도권 교육을 마다하고, 오로지 그림만 그리겠다고 결심했지만 가장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야 했다. 게다가 물감 값과 캔버스 값은 스스로가 마련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입시미술학원.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화백이 가르치던 아이들이 대학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자 미술학원은 소문이 났고,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제도권 교육을 거부한 화백이 제도권 교육의 틀 안에 아이들을 진입시키는 일에 힘을 보태는 그 현실이 우습고도 민망해 화백은 화실의 문을 닫고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를 왔다. 자기 검열에 화백은 또다시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렇게 올라온 것이 서울. 다시 팔 개월 만에 양평으로 이사를 갔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그런 화백을 말렸지만 그의 성품을 누구보다 저 잘 알기에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도망가지 않고, 두 눈 감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것. 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참으로 대단한 용기이다. 화백은 자신의 모든 작품에 애착이 가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마음이 가는 작품이 있다. 스스로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는 그것은 바로 ‘49인의 명상’.  
“어느 날 동네 사진관 쓰레기통에서 한 뭉텅이의 필름을 발견했습니다. 디지털에 쫓겨 아날로그 카메라가 설자리를 잃었지요. 그 쓰레기통은 그런 아날로그 필름들의 무덤이었습니다. 헌데 그 필름들은 증명사진들이었습니다. 달동네 사람들이었고, 우리 이웃들이었습니다. 증명사진은 무언가 새로 시작하기 위해 찍는 사진들입니다. 그 새로운 시작이 일견 대견하기도 하지만 짠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새로운 휴식을 주고, 치유할 수 있는 명상의 시간을 주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걸 네거티브로 뽑아 포지티브로 바꾸고, 그렇게 그 위에 덧입혀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49인의 명상’은 49인의 얼굴들이다. 그 속에서 그들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49. 49라는 의미는 영혼이 세상에서 머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곳에는 나비가 난다.
시적 메타포로 곧잘 등장하는 것이 나비이다. 화백도 즐겨 나비를 쓴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영매가 바로 나비인 것이다. 죽음과 삶의 이미지. 화백의 작품 속에서 끈질기게 교차하고 있는 것이 삶과 죽음의 이미지다. 그뿐 아니다. 화백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많은 이야기가 있다. 보여 지는 것보다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많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문학적이다.
그는 사진위에 붓칠을 더해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작업을 즐겨한다. 거기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 사진이 가지고 있는 시간성과 역사성이 화백의 세계와 만나면서 전혀 다른 작품으로 탄생한다. 게다가 화백이 작품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라는 점에서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그런 치열한 삶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준 것은 폐암선고였다. 8년간의 투병을 딛고 일어난 지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자연을 동경하고 자연에 눈길이 간다는 것이다.
“제 고향은 밀양입니다. 집을 나서면 백사장이 있었죠. 햇빛에 부딪쳐 하얗게 빛나는 백사장은 내 영원한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물이 있는 양평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온 밀양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고, 그 자연 속에서 건강을 회복하고, 그 자연 속에서 그는 작품의 대상을 찾고 있다.
안창홍 화백은 그 자연을 보고 느끼기 위해 마당에 꽃을 가꾸기 시작했다. 온갖 꽃들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그곳에 그대로 인간의 삶이 들어있었다.
“강한 놈은 살아나고 약한 놈은 죽었죠. 헌데 그중에서도 눈길을 잡아끄는 꽃이 맨드라미였습니다. 맨드라미는 식물인데, 왠지 식물 같지 않고, 동물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맨드라미를 그리기 시작했지요.”
안창홍 화백은 꽃을 통해 그렇게 자연의 이면을 보았다. 하지만 그 꽃마저도 사람살이와 무관하지 않다.
화백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하나씩 실천해나가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작품과 관련한 영화도 만들고, 그간 에스키스로 남겨두었던 입체작업도 계획하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이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더불어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자기를 사랑하고 예술가로서 자존감을 가지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자신을 아끼고 존중하다보면 모든 것은 따라오게 돼있습니다. 당장에는 외롭고 힘들겠지만 그래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놓치면 안 됩니다.”
그의 당부가 눈처럼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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