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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N CHANG HONG '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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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VIEW] 아름다움을 묻다 2011/09/13
[2011-04  No.516  최원실 리포터 기자 goody23@naver.com 사진 박경섭
범인(凡人)들의 나신 그리는 ‘못된 화가’ 안창홍에게



‘화단의 이단아’라 불리는 서양화가 안창홍의 29회 개인전 <불편한 진실>전에서 관객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갤러리를 찾았지만 오히려 관객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듯한 모델의 시선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시선을 피한다.
모델은 백화점 여직원, 문신 가게 주인, 이웃집 농부 같은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다. 애초에 에로틱이나 관능과는 거리가 먼 나신을 캔버스에 옮긴 화가에게 아름다움에 대해 물었다. 평범한 이웃들의 옷을 어떻게 벗게 했는지도 함께….


지도 검색으로 미리 가본 서양화가 안창홍(58)의 화실은 리포터의 남편이 ‘여자 혼자 보내기엔 위험한 곳’이라고 할 만했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지도를 아무리 확대해도 길 외에는 변변한 건물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난 여자가 아니라 아줌마라 괜찮다’며 달려간 곳에서 차를 멈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비게이션은 가도 좋다 일러주는데, 커다란 시냇물이 떡 버티고는 건널 테면 건너보라고 한다. 차가 아니면 어떻게 건너라는 건지 엉성한 징검다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폭우라도 쏟아져 냇물이 불어나면 영락없이 마을과 단절된다는 안 화백의 화실에 도착하자, 그림 속 복돌이가 반갑게 달려온다. 살림채와 작업실이 따로 있다지만, 살림채에 가족은 없고, 복돌이를 포함한 강아지 세 마리가 안 화백의 유일한 이야기 상대인 듯했다. 작업을 위해 안 화백은 오래전부터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화단의 이단아, 마이너리티는 아니다



“에스프레소 한잔 줄까요?”
유난히 천장이 높은 작업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를 의식했는지 나이 지긋한 화백이 묻는다. 황송하기 이를 데 없지만 화가가 직접 만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 냉큼 대답하고 그의 뒤를 따랐다.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노련한 손동작이 오랫동안 커피를 만들어본 솜씨다. 하지만 싱크대에는 씻지 않은 잔이 여럿 쌓여 있다. 제자가 있다면 이런 일쯤 알아서 할 텐데 제자를 두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제가 못돼서 그래요. 아내는 늘 저더러 세상과 타협할 줄 모르고 제 고집만 내세우는 못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털털한데 작품에서 만큼은 너무 완벽하고 까다로워서 제자를 못 둬요.”
‘고졸 학력’과 ‘비전공자’ ‘이단아’ ‘마이너리티’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안 화백은 특유의 비판적 시선으로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신랄하게 표현하며 화단의 호평과 마니아 층을 동시에 거느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자신의 그림은 벽걸이 장식용이 아니라는 안 화백의 말처럼 그의 그림은 거실 벽에 걸기에도, 세인이 칭송하는 아름다움과도 거리가 멀다.
“외눈박이만 사는 세상에서는 눈이 두 개인 사람이 비정상이죠. 예술은 경제적 도구가 아닙니다. 상품이 아니에요. 팔기 위해 그려서는 안 되죠. 그런 것들에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나를 이단아로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결코 마이너리티는 아닙니다.”
고백컨대 그림에 관해서라면 초등학교 미술반에서 일주일을 꼬박 귀신 놀이만 하다 쫓겨난 기억이 전부인 리포터로서는 미술 작품에 대한 심미안이 없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이끄는 강한 끌림과 똑바로 눈을 뜨기조차 힘든 강렬한 원색을 보고 있을 때의 묘한 카타르시스는 다시 그의 작품 앞에 서게 만든다. 한 지인은 “그의 그림들은 내 안에 숨어 있는 어떤 뜨거움을 자극한다”고도 했다. 안창홍의 마니아들 역시 각기 다른 이유로 그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아닐까?



주변 인물을 통해 삶의 진정성을 묻다

화가에게서 모델이 되어달라는 말을 듣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안 화백은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웃들을 그림 속으로 불러왔다. 백화점 점원, 문신 가게 주인, 이웃집 부부 그리고 70대 농부도 포함된다. 화가에게 목격되는 ‘그리고 싶은 모델’은 어떤 사람일까?
“살아 있거나 죽어 있는 모든 것입니다. 하지만 만나는 모든 사람을 그린다면 아마 선 자리에서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할 거예요. 그들 중에서 인연이 닿는 분들이 제 그림의 모델이 됩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이 옷을 벗고 그 앞에 서기까지는 화가가 지독한 스토커나 기막힌 달변가이지 않았을까? 평범한 이웃을 모델로 세우기까지는 오랜 설득과 이웃으로서 소통과 신뢰가 바탕이 되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일탈을 경험해보고 싶은 충동이 있다는 것. 안 화백은 모델들이 ‘특별하거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의외로 여자보다 남자들이 훨씬 섭외가 힘들었다고. 섭외가 가장 힘들었던 모델은 70대 농부. 예술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끌어냈다기보다는 10년에 가까운 이웃 간의 정으로 모델이 되어주었단다. 그런데 이 모델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다리를 한껏 벌리고 자신을 드러내는가 하면, 관객의 눈을 당당히 바라본다.
“전통적인 누드화에는 여자가 많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수동적 포즈를 취하죠. 관음증에 걸린 남성들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한 포즈예요. 미술사 속의 인물들은 실존적 인물이 아닌 가공되고 포장된 인물이죠. 그러나 제 그림 속의 인물은 에로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객과 눈을 마주보고 있으니 보는 사람 입장에서 불편해지죠. 삶에 대해, 육체에 대해 제대로 봐야 합니다. 건강한 모습만이 진정성이 있습니다. 포장되고 가공된 것은 천박해요. 인간 대 인간으로 가슴과 가슴이 만나야 합니다.”
동안 열풍에, 기혼 여성에게까지 만연한 미인대회, 매일 아침 보톡스로 세수하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하는 세상이 아닌가? 주름진 얼굴과 뚱뚱한 몸이 게으르고 자기 계발에 소홀한 듯 취급되고, 성형이 당연시되는 현대인의 모습을 안 화백은 ‘미디어의 농간’으로 단정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건강한 사회성을 지니고 사회에서 자리매김하는 생활인의 모습에 있다는 것이다.



자의식 강한 화가, 사명감으로 일해

화가 안창홍은 손에 뭔가를 쥘 수 있을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뿐 아니라 음악과 문학에도 소질을 보인 안 화백은 인근에서 신동으로 불렸다. 하지만 음악은 악기가 고가여서, 문학은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서 결국 그림을 택했다. 화가 안창홍 앞에 늘 따라붙는 ‘고졸 학력’이지만 하마터면 그마저도 마치지 못할 뻔했다.
“나는 호기심이 무척 많은 학생이었어요. 고등학생 때 우리 학교에 처음으로 화재경보기가 생겼는데 궁금하지 않겠어요? 한번 울려보고 싶었죠. 학교에선 퇴학시키려고 했는데 교감 선생님이 ‘그럴 수도 있지’라며 감싸주시더라고요.”
그가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공사판을 떠돌기도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생활 전선에 뛰어든 그를 수소문해 학교를 졸업할 수 있게 한 것은 일찌감치 그의 재능을 알아본 미술 선생님이다. 안 화백은 “학교라는 작은 그릇이 나를 담을 수 없었다”며 학교가 지나치게 규격화되었다고 말한다. ‘인간 국보 1호’를 자처한 양주동 박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만큼 안 화백은 자의식이 강하다. 몇 해 전 폐암 수술을 받았다는 그는 병원에서 ‘규칙적인 생활과 절대 안정’이라는 처방을 받았지만, 규칙적인 생활 자체가 자신에게는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죽음은 극복하기위해 있는 것. 오히려 아까운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 없어 밤새워 작업을 하고 전시회까지 열었다. 규범이나 틀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만하다.
가재는 게 편이라던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화가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맘껏 자유롭고 행복하게 산다지만, 여성으로서 아내의 삶은 어떠했을지 궁금했다.
“행복하기보다는 보람과 성취감이 많죠. 아내는 두 아들과 서울에 있어요. 작업을 방해할까 봐 제가 부르기 전에는 오지도 않아요. 고마운 부분이지만 작품을 위해 가정의 안락과 행복을 포기한 내가 더 가엾지 않나요? 저는 20대 초반부터 미술의 중심에 있었고, 공인으로서 사회적 책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난 체가 되지 않기 위해 사명감을 갖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속인으로서 여전히 그의 아내 편이지만,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삶에 대한 진정성만큼은 그의 눈빛에서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환갑을 코앞에 두고 있고 폐암 수술까지 받았다는 그의 모습 어디에도 쇠락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끊임없는 창작욕과 화가의 사명감이 그의 눈을 빛나게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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