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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창홍과의 대담 2009/11/18


- 김 성 원 (미술평론, 동덕여대 교수)

김성원 : 많은 작가들이 회화작업으로 시작하지만 작업도중 다양한 매체와 접하게 되면서 표현의 도구를 바꾸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안 창홍씨의 경우 근 25년 동안 회화를 통한 자기표현을 고수 해온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우주의 심장 (1973)
캠버스 위에 유화물감 72.7*90.9(cm)
  가족사진 (1981)
종이위의 유화물감 60* 100(cm)




안창홍 :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손 재주기 좋았습니다. 그리기도 잘했지만 만들기도 잘했죠. 동요도 만들었고 소설 쓰기도 좋아했습니다. 내가 살던 시골에서는 신동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다방면에 소질이 많았죠. 중학교 시절에는 한 동안 소설 쓰기에 심취했지만 글을 통해 표현한다는 것이 그 당시 나에게는 웬지 복잡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그때 내 개인적 삶이 복잡하고 힘든 것을 탈피하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겠죠. 어쨌든 나는 곧 그림이라는 좀 더 직접적이고 시각적인 방법에 빠져들었습니다. 나의 힘겹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그림을 통해 표출할 수 있었고 나는 그것이 그냥 좋았습니다. 악기를 다루는데 소질도 있었지만 경제적 상황 때문에 결국 중도하차 하고 말았지요. 어쩌면 내 안에 있는 것을 쏟아 놓을 수 있는 방법 중 그림이 그 당시 가장 손쉽고 내 상황에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소극적 선택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그림 그리는 것 또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가장 잘, 그리고 남 보다 쉽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 몸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즉각적으로 표현하기에 수월했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위험한 놀이(1983)
종이위에 색연필 109.5*79.5(cm)
노인의 얼굴(1986)
50 ×60.6cm, 캔버스위에 아크릴릭




김 성원 : 안창홍씨의 작업을 보면 색채를 통해 시기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색의 사용이 상징적입니다. 말하자면 초기 작업에는 몽상적 파란색 그리고 기억을 환기시키는 빛 바랜 회색이나 갈색 최근 작업에서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색채나 화려한 보색등을 예로 들 수 있죠. 안 창홍씨께서 특별히 색채의 선택에 중요성을 두시는지요?

안 창홍 : 나는 그린다는 행위와 색채의 선택을 별개로 보지 않습니다. 내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내가 살아온 삶을 표현한 것이고 그것의 진실한 표현을 위해 나는 색채뿐만 아니라 다양한 회화 방식을 사용합니다. 내가 어떠한 소재 또는 주제를 택하는 가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상황과 시대적 배경에 따라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달라지고 그 표현을 시각화하는 방법 중에 색채가 들어가는 거지요. 예를 들어 최근 작업에 사용하는 플라스틱 색채는 현대사회의 유행과도 같은 가벼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내 그림에 있어서 색채뿐만 아니라 양식, 기법, 주제, 제목등은 모두 동등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회화를 통해 내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체험한 현실의 이야기들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모든 방법들이 적절히 조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성원 : 인간의 절망과 고통을 다룬 80년대 서술적이고 복잡한 회화 방식과 비교해 볼 때 90년대 작업은 단순하고 가벼우면서도 상징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주제들도 욕망, 섹스, 유혹, 방탕등 세속적인 측면을 다루고 있구요. 이렇게 작품 내용과 방식의 변화는 어디에서 유래하는지요? 개인적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요?

안 창홍 : 내 작업 방식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든지 아니면 현실에서 출발한 내 삶의 일 부분을 일종의 "트릭"을 써서 표현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내 머리 속에서 입력되어 있는 일상의 장면들 가운데 하나를 뽑아서 회화라는 방식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그림의 주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작가가 원래 그런 것이 아닙니까? 말하자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형언어라는 프리즘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고 그것이 관객에게 현실 그 이상의 것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겠죠. 그것이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면 그것에 대해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상징성을 생각하고 색을 선택한다거나 회화양식을 거기에 끼어 맞추는 것은 아닙니다. 주제, 색채, 기법 등이 자연스럽게 내 머리에서 손을 통해 화폭에 담겨지는 것이지요.


여행떠나는 이무기
채색종이위에 오려붙이기
56X76(Cm)
1992
탱탱한 청춘
1998, 65 ×91.5cm
캔바스위에 아크릴릭




김 성원 : 지금까지 안 창홍씨 작업에 대한 비평들을 읽어보면 현실발언을 우화적 기법으로 표현했다고 하는 평들이 있는데... 안 창홍씨는 이러한 현실의 우화적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러한 표현 방법이 현실발언에 대한 리얼리티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안 창홍 : 현실을 고발하고 그것을 위해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해서 현실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80년대 민중운동에 가담했었지만 저는 운동을 위해 예술을 목적으로 삼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을 고발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작가로서', '예술 안에서' 전개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작가로서 제 입장은 암담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때로는 우화적으로 때로는 과장해서 작가만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곧 '진실을 말하는 예술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사실 내가 80년대 민중운동에 참여하며 작업했을 때 그러한 방법이 우화적인지 뭔지 생각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정치적 사명을 갖고 현실발언을 한 것도 아니며 단지 내 삶의 진실을 표현했을 뿐이지요. 말하자면 예술을 운동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암울하고 참담한 현실을 예술로 표현하려 했던 것입니다. 비평가들에게는 그것이 혈실발언을 위한 운동일 수도 있겠고 또 그것을 우화적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꽃밭에서
캔버스 위에 아크릴물감
89.4X130.3(Cm)
1992
소녀-째려보다
1999/65 ×91.5cm
캔버스위에 아크릴릭




김 성원 : 안 창홍씨 작업 중 "눈"은 어떠한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까? 가족사진의 눈을 검은 색으로 막는다든지 파리 떼가 사람의 눈에 붙어있는 이미지들은 어디서 유래하는지요?

안 창홍 : 눈을 막았다는 표현이 재미있군요. 사실 나는 막은 것이 아니라 뚫었거든요.
추억으로만 존재하는 가족들의 눈을 통해 절망으로 달려가는 내 모습을 표현한 것이죠. 이 가족사진 시리즈는 처음에는 내 가족사진을 바라보며 일종의 한풀이로서 그리기 시작한 것이죠. 모든 예술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그 범위가 확대되어 갑니다. 친구들 집에 갔을 때 책상머리에 놓여진 그들의 가족사진을 보며 인간의 한을 느끼게 되듯이 말입니다. 그들의 눈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암흑과도 같은 깊은 절망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죠. 그래서 눈을 까맣게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리 떼의 경우 1996년 인도 여행 중 캘커타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들어갔을 때, 피난민을 방불케 하는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있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는 것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 여인의 얼굴에 파리들이 까맣게 붙어있는 모습 그리고 그 여인의 배 위에 앉아 울고 있던 어린아이의 모습이 뇌리에 사무쳐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실존에 관해 생각했고 또 시골의 작업실에 살며 여름마다 파리 떼들과 싸우면서 이러한 이미지들이 나오게 된 겁니다.

김 성원 : 안 창홍씨가 파리 떼들을 왜 소재로 선택했는가에 관해 질문하려고 했는데 잘되었군요.
그 부분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죠. 제 개인적으로 이 번 노화랑 전시에서 우글거리는 파리 떼가 똥과 같은 인간의 권력과 욕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업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파리 떼는 안 창홍씨의 작업에서 새롭게 등장한 소재라고 볼 수 있는데 특별히 파리를 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안 창홍 : 조금 전에도 얘기했지만 파리의 속성은 시골에 살아보아야 정말 잘 알 수 있습니다.
파리는 웽웽거리는 소리와 함께 집요하고 끈질기게 달려듭니다. 또 모기와는 다르게 파리는 할타먹는 속성이 있지요. 마치 혀로 피부를 할 듯이 말입니다. 아주 음탕하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리고 더러운 것을 좋아하고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는 목숨걸고 달려드는 파리 떼들에 시달리면서 인간의 욕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김 성원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안 창홍 : 글쎄요...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고 믿는 진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 진실을 예술을 통해 표현하기를 원하는 거죠.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 그림의 스타일이 변해 가는 것도 바로 내가 생각하는 현실을 진실하게 보여주기 위한 방식입니다. 이것은 현실을 그대로 묘사한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현실을 바라보는 인간의 입장은 참으로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이지요. 그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적 요소들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내 마음 속에서 분출되기도 하고 잠재하고 있기도 합니다. 앞으로 어떠한 요소들이 분출될지는 두고 보아야겠지요.

1999년 12월 5일 오후 6시 30분



가족사진/1979/100 ×80.3cm/캔버스위에 유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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