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 똥







안창홍 여행기
AHN CHANG HONG ' 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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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브 나무 숲길을 지나 200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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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기나섬의 언덕


아침 7시 30분, 모닝콜 전화 벨 소리에 잠을 깨다.

호텔 식당에서 레몬 쥬스와 베이컨, 호밀빵으로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페레우스항의 선착장으로 향했다.

쾌속선을 타고 호수처럼 잔잔한 에게해를 달리는 동안

일행들은 제각기 카메라 혹은 스케치북을 꺼내어 들곤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고, 글 쓰기에 열중하는 듯

에기나 섬에 도착할 때까지 다들 말이 없었다

나도 뱃머리 난간에 기대선 체 작업방향 때문에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하느라 애쓰고 있었다.

神들의 이야기에서부터 비극의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숱하게 떠오르는

낱말들 때문에 생각이 깊어질 수록

머리속은 더욱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럴 땐 그냥 편안하게 작은 즐거움에 빠져 보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방법일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화도 만한 섬의 선착장 주변에는

토산품 가게와 레스토랑, 선술집이 몰려 있는데

잘 정돈되고 청결해 보였다.

주민들 또한 여유롭고 친절했다.

우리 일행들은 약속시간과 다시 만날 장소를 정해 놓곤

제각기 뭔가 건질 거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처음엔 나도 이번 여행의 목적을 떠올리며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작업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찾아

여기 저기를 기웃거렸으나 나도 모르는 사이  

본래의 목적을 잊은 체 눈앞에 펼쳐진

이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마을의 정경 속으로 젖어 들었다.

수 백년의 세월을 견뎌온 오래된 집들과 골목길,

잘 닦인 유리창 앞에 가지런히 놓인 화분들,

페인트를 정성껏 칠한 대문들과 그 옆에 놓인

낡고 손때묻은 나무 의자, 길섶에 핀 작은 꽃들,

골목 사이사이로 보이는 수평선,

소박하고 정겨운 이 모든 광경들이

이번 답사여행에서 지금까지 보고 느껴온

웅장한 신전들과 그곳에 얽힌 신들의 사랑 이야기나

영웅담과는 전혀 다른 느낌(사실 거대한 신전 하나를 완공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목숨이 제물로 바쳐 졌겠는가? )의 그리스로 눈앞에 다가

왔다.  



서민들의 소박한 생활방식과 과거로까지

깊게 연결되어 살아 숨쉬는 문화의 전통,

시공을 초월한 현재의 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녹아있는 문화를 향유하는 조상 잘 만난 이들의 모습이 나는 부러웠다.

점심 식사 후 다음 예정지인 포세이돈 신전을 관람하겠다는 팀을

먼저 섬 밖으로 내어 보내고 나를 포함한 4명의 일행만 남아서

섬을 다시 찬찬히 둘러보기로 하였다.

빡빡한 일정 때문에 이번 여행에선 이곳이 아니면

시골길을 한가롭게 걸어볼 수 있는 기회를 찾기가 힘 들것 같은

예감이 나에게 포세이돈 신전 답사를 포기하게 한 것이다.

나와 함께 한 3명의 일행도 아마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우리는 훨씬 느긋해진 마음으로 섬의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며

보너스처럼 갑자기 풍족해진 시간의 여유를

내가 생각해도 얄미울 정도로 늘어지게 즐겼다.

여행의 참 맛은 이런 뜻밖의 행운 속에 숨어있는 것 아니던가!



가파른 골목길을 벗어나자 언덕 저 멀리

수평선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푸른 하늘과 지중해 특유의 코발트 빛 바다,

맑은 햇살과 들꽃들, 선홍빛 개양귀비며, 노란 민들레,

초롱꽃, 패랭이꽃, 온몸을 침으로 무장한 엉겅퀴,

수없이 많은 꽃들로 가득한 들판, 그리고 올리브 나무 숲.

바람이 스칠 때마다 흔들리는 잎들.

아! 아름다운 에기나 섬의 언덕,

햇빛에 반짝이는 애게해를 내려 다 보며  이곳의 모든것들을

온몸으로 느껴 보기 위해 신체의 감각기관을 모두 열어둔 체

가능하면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올리브 나무 숲길을 지나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화가라는 직업도 잊어버린 체 그저 행복하기만 하였다 .



아테네로 돌아오는 배 위에서 바라보는 노을 빛은

여행자의 마음을 감상에 젖게 하였다.

배 위로 부는 바람은 마치,

아름다운 여신의 손길이 나의 온몸을 애무하는 듯

부드럽고 달콤하였다.

                            2004. 4. 22.밤 포세이돈 호텔 507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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