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 똥







안창홍 여행기
AHN CHANG HONG ' 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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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도 음식기행-첫 끼니를 라면으로 때우다" 200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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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비행기 안에서 찰깍! 저녁노을에 물든 구름의 바다.
아래: 순천의 구멍가게, 라면맛을 생각하며
        작업실에서 작품 구상을 위해 찍어본 사진.




며칠째 폭우가 퍼부어 작업실 앞 개울이 넘쳤다.

이곳은 다리가 없어 물을 밟고 지나 다녀야 하는데, 불어난 물로 건널

수 없게 되어 며칠째 개울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다.

남도 맛 기행을 못 가는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늦더라도 꼭 참석해줬으면 하는 주최측의 말에 미안한  마음으로 개울

물이 줄어들기만을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후 광주행 마지막 비행기를 예약해 놓고 위험을 무

릎쓴체 개울 건너기를 감행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에 몸을 싣고

느긋해진 마음으로 비행기 창 밖을 보았다.

노을 빛과 구름모양이 장관이라 넋을 놓고 바라 보면서 '오길 잘했구

나' 생각하였다. 태풍이 지나간 구름바다는 정말 대단했다.

광주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가고 다시 순천행 고속

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순천에 이르자 현지

조각가 한 분이 마중 나와 있었다. 악수를 나누고 일행들이 있는 장소

로 달려 가는데 그때서야 피로와 시장기가 함께 몰려왔다. 어쩌다 보

니 종일을 굶은채 이곳까지 온것이다.

도심을 벗어나 어두운 시골길을 달리면서 조각가 선생에게 내가 "시장

하다"고 말하자 일행들이 있는 호텔엔 식당이 없는 듯, 창 밖을 두리번

거리며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순간! 불빛없는 창밖을 바라보며'맛 기행' 첫날을 주린 배로 잠을 청해

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식당을 찾지

못해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한참을 헤매다 버스 승강장 앞 조그마

한 구멍가게 옆에 차를 세우곤 송구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까짓, 식사한끼 아무렴 어떻랴!' 싶어 가게문을 밀고 들어갔다.

잡화로 가득한 한쪽 구석에 조리대와 조그마한 식탁 두개가 놓여 있었

는데 한쪽에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두명이 마주앉아 김밥을 먹고 있었

다.

내가 앉은 탁자 위엔 삶은 계란 몇 개와 꽃소금을 담은 그릇이 붉은 목

단이 그려진 양은 쟁반 위에 놓여있었다. 그옆엔 포스터 모던한 색깔

의 플라스틱 파리채도 놓여 있었다. 쥔장을 불러 김밥과 라면을 시켰더

니 김밥은 다 팔렸단다. 그리곤 제법 연륜이 있어 보이는 양은 남비에

물을 붓고 가스 렌지에 불을 켜고 바스락거리며 라면 봉지를 뜯었다.

같이 들어 왔던 조각가 선생은 그냥 앉아 있기가 멋 적었던지 자신

은 '저녁을 먹었다'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식사를 끝낸 여학생들

도 나가 버리고 혼자 남은 나는 양은남비에 물 끓기를 기다리며 식탁위

에 있는 삶은 계란을 노려보며 하나 '먹을까 말까' 갈등을 때리고 있었

다.

너무 시장했기 때문에 삶은 계란하나의 유혹은 대단했지만, 라면을 맛

있게 먹고 싶은 마음으로 참을 수 없는 배곺음을 애써 견디고 있었다.

처음 가게문을 열고 들어섰을 땐 남도의 유명한 음식들의 맛을 음미하

기 위해 위험까지도 마다 않고 개울을 건너고, 산과 구름 바다를 지

나... 비행기와 몇 번의 차를 갈아 타면서 험난하고 먼길을 날으고 달려

서 여기까지 왔건만 첫 끼니가 겨우 라면이라니... 어처구니가 없고, 한

심한 생각마저 드는 거였다.

그런데, 양은냄비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물 끓는 소리와

작은 구멍가게 진열대에 알록달록, 오밀조밀, 소담스레 놓여있는  물건

들의 정겨운 풍경에 취해 점점 즐거운 회상에 젖어 들었다.

시간의 화살이 순식간에 아득한 추억의 공간 속으로 나를 데려다 놓은

것이다.

아! 잊을 수 없는 그때의 라면 맛!

그리고 포만감에 젖은체 아껴 두었던 꽁초에 불을 부치고 한 모금 연기

와 혀끝의 절묘한 기술이 만들어 내는 하얀 도너츠 ! 그땐, 담배를 낱개

피로 사 피우기에도 주머니 사정이 궁핖한시절 이었으니까 라면 한그

릇과 꽁초 하나의 행복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가 있겠는가!

고급 위생저라고 적힌 종이 포장을 찢고 나무 젓가락을 뽑아 들고선,입

안에 고이는 군침을 삼키며 침착하고 느린 동작으로 남비 두껑을 열었

다. 김이 피어오르는 라면 위에 고춧가루를 조금 친 다음 남비뚜껑에

뜨거운 면가락을 올려놓고 '후후' 불면서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 코

끝엔 땀방울 마져 송글송글 맷혔다.

곰삭은 김치 맛 또한 일품이었으니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게눈 감

추듯 다 마셔 버렸다. 남비속은 설겇이를 한듯이 깨끗해 져 있었다.기

분 또한 충분이 좋아졌다.

이 가게에 앉아있는 나의 모습이 고등학교시절, 수업 땡땡이 치고 라

면 끓여 먹던 학교 뒷문 옆 구멍가게에 앉아있는 듯 느껴지기도 했던

것이다. 간판도 없는 그 가게의 이름을 우리는 "부뚜막"이라고 불렀었

는데..인정 많튼 쥔아주머니는 아직 살아 계실까? 살아 계시다면 호호

할매가되셨을텐데...

쥔장에게 잘먹고 간다는 인사의 말을 남기고 훨씬 가벼워진 발걸음으

로 가게를 나왔다.

다시 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일행들이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고

유쾌하고 즐거운 3박 4일의 맛기행이 시작 되었다.

그러나 여행 내내 나는 그 라면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또한, 비행기창 밖의 구름바다와 빗방울 맷힌 호텔 창너머 완도 앞바다

의 새벽빛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가슴속에 오래오래 남게 될것

이다.





   고비사막 가는길,
   뭄바이에서의 첫날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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