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 똥







안창홍 작업노트
AHN CHANG HONG ' WORK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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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치? 빵과 서커스면 충분하다- 2008/04/30
아돌프 히틀러(book..ing365에서 펌)

한나 아렌트와 테오도르 아도르노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파시즘을 일개 공갈협박범들의 우발적인 범죄 행동이라고 잘못 알 뻔 했다. 세상이 너무 어수선하다 보니 어디서 괴력난신 따위가 출몰하여, 다소 경황은 없었지만 그런대로 평화로웠던 마을을 광기어린 폭력과 증오의 장으로 바꿔버렸다는 식이다.

그리하여 단 한 명의 괴물, 혹은 그와 행동을 같이 했던 일당들을 ‘악의 축’으로 귀속시키고, 그와 같은 우연한 괴물에 의해 평화로웠던 마을이 갈등과 고뇌에 사로잡혔으며 그 와중에 어쩔 수 없이 조금씩 그들에게 동조했다는 식의 변명이 발생하는 것이다.

어제(4월 29일) 발표된, ‘친일인명사전’과 관련하여 격렬하게 항의하는 쪽의 주장이 이와 그리 다르지 않은데, 성실하고 근면했을 뿐이라거나 부분적인 동조였다거나 그 당시에 그렇게 하지 않았을 자가 누구이더냐 하고 반문하는 것을 보면, 깊은 연민과 더불어, 악행의 구조적 발생 혹은 구조적 악행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공부가 아직은 덜 여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잠시 2차 대전의 여파 속으로 돌아가 보자. 1962년 5월 31일, 칼 아돌프 아이히만의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그는 2차 대전 때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에 적극적 역할을 한 사람이다. 패전 후 그는, 19세기에 많은 독일인들이 이민을 떠났던, 아르헨티나로 도주하여 자동차 기계공으로 숨어지내다가 이스라엘 정보기관(모사드)에게 체포되었다.

그 역사적인 재판이 예루살렘에서 열렸을 때, 전체주의의 폭력이 어떻게 발생했는가에 대해 탁월한 분석을 해온 한나 아렌트는 <뉴요커>지 특파원 자격으로 예루살렘에 갔다. 그곳에서 참관 기사를 쓴 아렌트는 이를 보완하여 1963년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발간했다.


이 책에서 아렌트가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은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다. 아이히만은 재판 내내 칸트 철학을 들먹이며 명령받은 대로 의무에 따라 행동했을 뿐 악행이라는 의식이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그의 정신 상태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판정했다. 아렌트는 다양한 자료를 분석하여 아이히만이 근면하고 능력있는 인간이라는 점을 알아냈다. 그러나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그의 끔찍한 범죄는 바로 ‘생각의 무능성(thoughtlessness)’에서 기인하였다고 분석했다.

아렌트는 태어날 때부터 뭔가 결함이 있고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게 아니라, 악은 대단히 평범한 구조에서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악은 이 세상과는 다른 곳에서 느닷없이 닥쳐 오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인간의 내면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 발표한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이미 아렌트는 나태하고 뿌리 없는 개인들로 사회가 해체되고 국가가 무제한의 강압 장치로 전락하는 환경을 제시했다. 이 상황에서 대중은 이데올로기 선전에 동원되고 관료주의 체제가 이들을 확고하게 지배하면서, 급기야 이 평범한 대중이 악의 행렬에 가담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렌트는 대중들의 정치적 자유와 사회에 대한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될 때에 사회공동체는 훨씬 더 건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렌트는 적극적인 정치적 행동이 개인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인간 실존의 잠재력을 완전하게 실현시킬 수 있는 공동체의 힘이 될 것이라고 희망했다.

아도르노는 2차 대전의 파시즘이란 야만적인 상황은 어떤 악당들이 일으킨 우연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구조적인 상황이 배태한 것이라고 보았다. 파시즘은 장기간에 걸친 경제사적, 사회사적, 정치적, 사회심리학적, 문화적 과정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분석했던 것이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현대 문명의 위기의 근본은 인류가 집단적 자기 보존을 위해 시작한 자연 지배 및 이에 따른 사회적 지배의 총체적 산물이다. 지배를 목적으로 자연과 사회, 인간의 완전한 조작과 정비가 생겨나게 된다.


이때 등장하는 사회지배의 통치 원리가 바로 동일성의 원리이다. 사회의 다양한 요소를 동일한 하나의 형식으로 강제로 묶어버리는 지배 원리이다. 동일성은 모든 것을 동일성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인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상이하고 다양한 사물을, 그 다양성을 무시하고 억압하여 동일적인 것으로 상정해버리는 것이 지배의 속성이며 그 극단적인 야만의 형태가 바로 파시즘이 되는 것이다.


물론 아도르노는 이 이론으로 단지 파시즘 통치 체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미국식 문화산업에 의해 현대라는 거대한 구조가 하나의 문화적 동일성으로 굳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일성의 도구로서의 대중문화 산업은 자신이 제시한 도식적인 삶의 규범을 사회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그들의 내면 속에 정착시키게 한다.


현대의 개인은 타인에 의해 규정된 행태 규범을 강요받게 된다. 궁극적으로 대중문화 산업은 인간의 의식을 기형화, 퇴행화, 단순화, 균질화시키게 된다. 똑같은 구호, 형식,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강요하여 개인으로 하여금 기존의 사회적 관습에 잘 복종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문화산업의 핵심이 된다.


이는 통치를 원만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단순하면서도 왕성한 소비자층을 형성하여 문화산업의 기틀을 형성해주기도 한다. 아도르노는 바로 이같은 노예적 문화 상황을 실천적 이성으로 철저히 비판함으로써 그 사회가 다양성과 다원성이 보장되는 건강한 시민사회로 해방되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에는 대단히 상식적인 범주에 속하는 이같은 주장은 2차대전의 포화 속에서, 혹은 그 이후의 갈등과 타협과 논쟁 속에서 거듭 주장됨으로써, 오늘날의 사상적 시민권을 갖게 되었는데, 이 모든 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사람, 그 격렬한 논쟁의 핵심에 서있었던 사람, 우연히 등장한 야심만만한 청년 장교였지만, 종국에는 그 사회의 불안정성을 먹고 태어나는 파시즘이라는 괴물의 정수가 된 바로 그 사람, 아돌프 히틀러가 패망 직전인 오늘, 1945년 4월 30일에 지하참호에서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린 후 자살했다. 이튿날, 베를린은 연합군에게 함락되었다.



   6.10 촛뿔 집회에서 [4]
   작업실 풍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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