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 똥







안창홍 작업노트
AHN CHANG HONG ' WORK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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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에겐, 2011/11/08
예술가에겐 가난이 미덕이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예술의 성과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와 금전과 예술이 너무 가까와서는  결과물이 좋을수 없을것 이라는.....그땐 사회적 정서가 그랬습니다. 어쨋든 누군가 어렵사리 그림을 한 점 팔면 뭔가 죄를 지은 듯 부끄러운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술을 사곤 했었습니다. 그땐 그랬습니다. 예술의 가치는 대중적 인기나 금전적인 성공과는 별개로 평가 받았던 시절입니다. 그 시절엔 화가들뿐만 아니라 수집가들 또한 훌륭한 결실을 위해서는 기다릴 줄도 알았지요. 투자가치보다는 예술가와 예술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우선시되는 시절이었지요.

동네마다 작은 아뜰리에들이 있었고 몇몇 문하생들의 렛슨비로 월세와 생활비를 마련하며 작가들은 밤늦게까지 창작에 몰두하였지요.  문하생들 속에는 미대 진학생도 있었고 취미생도 있었지만 입시만을 위한 암기식 전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유로운 시선으로 미술에 접근하는 방식을 가르쳤지요.미술대학입시에서도  세련되고 잘 그리는 학생보다 소질과 재능을 우선시 했으니까요. 화실은 온기와 느림의 미학이 넘실댔고 서로 존중했으며 작가들은 가난했지만 자긍심과 보람으로, 노력한만큼 사회로부터 보상받으리라는 긍정적 미래를 꿈꾸던 시절이지요. 문하생들 또한 선생님의 창작생활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커다란 행운을 덤으로 선물 받은 시절이었지요 적어도 신 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려서 예술마저 시장경제체제에 편입되고 가치관이 물질 우선으로 돌아서기 전까지는 그랬었지요.

어느 해 부터인가  입시제도가 바뀌고 전국적으로 미술대학들이 우후 죽순처럼 생겨나고 삐까번쩍 시설 좋은 기업형 전문 입시미술학원이 앞다투어 생겨나고 미술학원 재벌들도 생겨났지요. 덕분에 슈퍼마켓에 구멍가게 밀려나듯이 뒷골목 아뜰리에 작가들은 작업공간과 생활의 터전을 잃고 어느새 가난이 미덕이든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처럼 아득해지고 밥줄 끊긴 절박함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만 하게 된 것이지요.  반대로 미술학원장들은 강남 룸싸롱에서 술값으로 백지수표를 낸다는 소문들이 부러움 반, 자괴감 반으로 떠돌던 시절. 화가이기를 포기하고 시류에 편성하든지 현실의 절박함 속에서 붓과 자존심을 움켜쥐고 절망하든지 둘 중의 하나였지요. 화가들이 가치관의 갈등을 겪던 시절이었지요.더러는 대학으로,더러는 유학의 길로,  더러는 다른 직장으로, 살아남기위해 급변하는 환경에 호흡을 맞추어 갔지요.  

미술시장은 신흥재벌들로 흥청대고 발빠른 몇몇 화랑들은 대형화, 기업화(직원들이150명 이상)되고 신 자유주의 물결의 풍요 속에서 단맛을 마음껏 빨아 들였지요.암기식 그리기로 치열한 경쟁의 입시를 치르고, 인문학적 철학부제의 교육을 받고 첫발을 내딛는 풋내기작가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여과 없이, 잘 팔리는 작가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잘 팔리는 그림과 좋은 그림을 구분지어주던 명예로움과 자긍심의 벽은 한순간에 허물어지고 만 것이지요 그렇게 사회적 능력(잘 팔림)과 무능력(안팔림)의 이분법으로 작품수준을 평가하는 시절이 도래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소주잔 기울이며 치열하던 작업에 대한 논쟁 대신 누구는 개인전해서 얼마 벌었더라. 누구는 작품 얼마에 팔았더라, 그친구 출세했더라, 그친구 성공했더라. 대화의 본질이 바뀐 것이지요.

쁘띠부르주아의 재력앞에 머리조아린 상업화랑주들과 그들과 결탁한 작가들이 벗어던진 화가로서의 자긍심과 명예의 댓가로 부풀려놓은  그림가격이 작품의 질과 수준보다 더 중요하게 치급받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난 것이지요. 그 영향은 안그래도 허약한 미술판을 더욱 저급하게 만들었으며 작품 수집가들의 하향화된 안목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정서에도 영향을 미쳤지요. 얼마 전, 현 정부가 부실대학 퇴출을 위한 예술대학 평가기준을 졸업생들의 취업실적으로 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한 예인 것이지요.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의 한심함이라니. 대한민국과 현 정치인들의 수준에 대한 환멸과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렸지요. 아무리 돈에 맹종하는 사회라 하더라도 예술 지망생들의 능력마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 성과물로 평가하겠다는 천박함이라니, 무지의 소산인 그런 누를 정책이 범해서는 절대 안될 것입니다. 한 작가의 예술적 성과물은 어렵게 어렵게 일생을 통해서 피어나는 꽃이니까요. 예술은 삶을 풍요롭게하는 숲과 새들처럼,  막장속에서 오염의 수치와 위험알려주는  카나리아의 노래처럼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이지요.물질 만능에 매몰된 지적 황폐함을 막아주고 지성과 가슴을 풍요로움으로 이끌어가는  유일한 수단인 것이지요.

   天刑
   핑계의 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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