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 똥







안창홍 작업노트
AHN CHANG HONG ' WORK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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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과 시작. 2011/06/26
3월초 개인전을 끝내고  몇 달이 지나갔다.
지나 보낸 석 달을 넋 놓은듯이 푸욱 쉬기도 했지만 십 수년간 미뤄오든 고장 난 어깨와 손가락 치료를 시작 했으니 하릴없이 마냥 놀기만 한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소개 받은 통증클리닉 병원을 찾아가 정밀검사도 받았고 끔직한 주사와 약도 처방 받았고 잘 지켜지진 않지만 처음 몇주는 의사의 지시대로 아픈 손가락과 어깨를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으려고 애도 써긴 했다. 농담삼아 "오른쪽 고장나면 왼쪽으로 그리지뭐"하면서도 정작, 그림 못 그리게 될까바 겁이나기는 한 것이다.

그 와중에 또 하나 겹친  일이 있다면 개인전 준비를 하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거의 매일 낮 밤을 파묻혀서 지내든 작업실을, 개인전 이후 어느 날 부터 인가 아예 쳐다보기 조차 싫어진 것이다.개인전을 치뤄낼때 마다 이런 감정 기복의  경험이 한두 번 아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된 적이 기억 속엔 없다. 내 삶의 유일한 안식처이며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도 한 작업실이 이렇게 몇 달 동안이나 스스로 에게 고의적인 홀대를 받기는 처음 있는 일인 것이다. 애써 긍정적 방향으로 원인을 분석 해 보자면 수술이후 쉬임없는 전시들로  피로가 누적되 있는데다  몸의 일부가 이미 고장 나 있음에도 무리하게 밀어부친 때문일 것이다. 비장감과 과잉 된 열정으로  정신과 몸을 너무 지치고 힘들게 만들어서 나 자신에게 넌더리가 난 때문일 것이다.

사실, 2007년 3월 수술 이후 지금까지 숨 고를 틈도 없이 달려왔지 않은가, 뒤돌아 보면 그 해 가을 아트 사이드에서 2인전 (말이 2인전이지 개인전 규모의 전시였으니까),다음해, 2008년 봄 사비나 미술관 개인전, 다음해,2009년 2,3월 부산 시립미술관 개인전(170점의 대규모 전시였다)과 그 해, 가을의 사비나 미술관 개인전, 일년 후인 2011년, 가나 화랑 개인전, 수술후 아찔 할 만큼 숨 차게 달려와 5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좀 쉬어서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스스로 에게 허가 받지 못한 휴식이니 기간이 길어지면서 얼마 전부턴 부담과 압박감으로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 지기 시작한 것이다.그러면서도 좀더 놀꺼얏! 하면서 의사선생 말씀도 깜박깜박 잊어버리고 어깨와 손가락이 아프거나 말거나 마당에서 곡괭이 질을 하고 삽질까지 해댄다. 여기저기 나무도 옮겨 심고, 이집 저집에서 얻어온 꽃들도  심는다. 불볕더위 아랑곳없이, 초롱꽃, 참 나리,  낮 달맞이, 매자나무, 산 수국 등등, 종일을 마당에서 보내고 난 저녁이면 볕에 익은 팔둑과 콧잔등이 화끈대고 팔과 어깨 통증이 걱정스럽지만 아침이 되면 또 삽질을하고 호미질을 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씨앗들을 파종한 후 싹 트는것을 드려다 보는 즐거움도 있다. 사르비아 중에 보라색이 있다는것도 처음 알았다.마당에 뒤덮힌 보라색 사르비아를 상상해 보라.멋지지 안은가.

단순 노동이 가져다 주는 무상 무념, 편안함의 중독이 무서울 정도다. 그나마 지각과 연결된 이성적 사고의 여린 끄나풀이 조심스럽게 은연중에 라도 그림에서 멀어저가는 육신과 넋을 다시 매듭지어주려 애를 쓰는 것이다. 사실 꽃과 나무 심기에 정성을 쏟는 이유가 무상 무념에 매료됨 말고   따로 또 있긴 하다. 내가 원하는 꽃들이 만개한 꽃밭에 묻혀 흐드르진 꽃들과 기이한 나무로 가득한 정원을  화면 가득 그리고 싶은 때문인데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중첩된 시간과 연륜의 권위가 묻어나는  정원을 상상하며 하나 둘 실천으로 옮겨 보는 것이다.이세상 모든정원은 켜켜이 쌓인 시간의 이끼 위에서 더욱 아름답고 풍성해 지는거이려니,  감상과 상상의 나래에 뭍혀  모처럼 행복하게 챙겨먹은 안 창 홍의 게릴라식 휴가도  이성과 현실에 쫏기어 이제 거의 끝자락에 온 듯 하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법, 끝은 시작의 또다른 이름. 그래서 어제부턴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느릿 느릿 작업실 청소도 하고 어질러진 물건들 정리도 한다.

그동안 몸에 무리가 가는줄 알면서도 애써 작업에 열중했든 이유를  스스로 추즉해 보면  수술후 무심한듯이  지내오긴 했지만 병상에 누워 느꼈든 죽음의 실체적인 공포와, 지나보낸 헛된 날 들에 대한 후회와  재빠고  냉엄한 시간에 대한 뼈저린 자각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어진다. 어쨌거나 며칠 후 부턴 다시 화가로서의 일상으로 돌아가 오래 전부터 세상에 태어날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그림들의 순산을  위해 밤잠 설치며 씨름을 해야 만 할 것이다. 에고,애고 내팔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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