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 똥







안창홍 작업노트
AHN CHANG HONG ' WORK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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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인의 명상`을 위한 작업단상 2004/10/01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증명사진용 필름 수 백장이 들어 있는 종이박스를 수집하였다. 박스의 뚜껑을 열고 방습제와

함께 빼곡히 쌓여 있는 해 묵은 필름 들을 바라보는 순간 영감과 호기심이 내 가슴을 뛰게 하였다.


사진관의 폐업으로 버려질 뻔한 이들의 네가티브 이미지들이 마치, 심술궂은 마녀의 주술로 얇고 투명한 필름 속에 갇

힌 영혼들처럼, 수 십 년이 지난 과거의 멈춰진 시간 속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이 작은 상자 안의 비좁고 캄캄한 공간 속에 수 백 명의 정지된 시간들이 갇혀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들의

포지티브 이미지가 궁금하기도 하였다.


필름이 든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 둔 채 며칠을 골똘히 바라보다가 이들을 작업으로 연결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

선, 상자 안에서 손가는 대로 100장의 필름을 뽑아 들고는 사진 현상소에 가로 70 X 세로110cm로 확대 인화를 주문하

였다.


며칠이 지난 후 사진을 받아 든 순간, 조그만 증명사진용 네가티브 이미지로는 상상조차 해 볼 수 없었던 일들이 눈앞

에 펼쳐졌다.

각양 각색인 주변부 사람들의 낯익은 얼굴들이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에워 싸고 있는 공통된

정서 속에서 제 각각 또 다른 형태로 삶의 질곡을 어깨에 매달고 있었다.

그 박제된 시간의 느낌은 주술의 힘을 발휘하여,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이  생경한 시적 영감 속으로 나를 데려갔

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응시하는 눈빛들은 정작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순간 카메라 렌즈 앞의 찰라 속에 멈춰있는 것이었다.

마치 눈을 뜬 채로 명상에 잠긴 듯이......

패널 위에 부착된 사진들을 작업실 벽면 가득히 기대어 펼쳐 둔 채, 바라만 보며 몇 달의 시간을 지나 보내고 바뀐 해를

맞이하였다.


작업의 머리를 잡는 데도 한참의 시간을 더 보내었다.

이유는 작업의 방향 때문에 몇 가지의 방식을 놓고 작은 고민에 빠졌기 때문이다.


… 결국, 작업 방향의 가닥은 잡혔다.

표현하고 싶었던 작업의 내용은, 이들의 실재 했던 시간들을 과거와 현재의 틈 사이에 놓아 보는 것이었다.

존재와 부재의 틈, 삶과 죽음의 틈, 소멸된 시간과 현재의 틈, 언젠가 그들이 살았던 그 곳과 빛 바랜 사진 속의 박제

된 과거의 틈.


작업의 방향이 잡히자 좀더 구체적인 작업방식을 메모해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1)  사진 위에 덧칠로 영혼의 빛이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눈을 감긴다.

2)  입술에 붉은 색으로 온기를 불어 넣어 줌으로써 삶과 죽음의 틈을  나타낸다.

3)  인물 주위에 매개자 혹은 전령으로서의 나비를 날게 하거나 인체 여기저기에 가볍게 내려 앉힌다.

4)  빛 바래고 정지된 시간을 상징하는 투명하고 두터운 고체 속에 인물들을 잠기게 한다.

5)  강철로 만들어진 얇고 견고한 사각의 틀 속에 박제된 시간을 가둠으로써 작품 49인의 명상은 마감된다.


사진이 인화된 지 2년 여 만에 더위가 시작 될 무렵 작업은 완성되었다. 금년 봄, 제작 중간 단계에 부산 비엔날레 측에

서 작품 출품 요청서가 날아왔다. 금년 비엔날레의 주제가 `틈`이었다. 내가 진행하고 있던 작업 주제의 동일한 우연 덕

분에 새로 작업을 시작해야 할 부담감 없이 진행 중이던 작업을  마무리하는데 정성을 쏟을 수 있었고 결과는 흡족했

다.
   물푸래 나무와 월산리 김씨에 대하여,
   작업일기-양귀비 언덕에 꽃을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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