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 똥







안창홍 작업노트
AHN CHANG HONG ' WORK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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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업실에서 2007/01/03
오늘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페인트가게에서 캔버스 바탕용 본드랑, 칠할 때 쓸 도구를 산다. 본드 하나라도 우리나라 것과는 다르니 꼼꼼히 물어보고 잘 골라야만 한다. 나라가 커서 그런지 목공용 본드도 회사와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 질 또한 천 차 만별이다.

물건 살 때 거들어 주러 따라온 하숙집 주인녀석이 심각하게 이것저것 살펴보고 각기 다른 회사 제품들 마다 적힌 용도를 읽어보느라 끙끙 된다. 그 동안 나를 따라다니며 작업에 필요한 것들을 이것저것 사는 동안 세밀히 살펴보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선생님 칠한 뒤 나중에 딱딱한 거이는 아이 되지 않소? 나중에 그림이 부서지면 아이되지않소?”나름대로 생각한 것을 물어 보는데 반 전문가처럼 정곡을 짚는다. “그럼 그럼, 그러니 신중히 골라야 돼!” “알가슴네다” 마음씀씀이가 고마워 등을 두드려준다. 아들녀석 나이보다 한살 많으니 아들이나 조카대하듯 하는것이다.자신도 그게 좋다고 했다.

작업실로 오는 골목어귀 빵 가게에서 김이 풀풀 나는 만두를 두게 산다 어른 주먹만한 것 2개에 1원 우리 돈 130원이다.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며 먼저 한입을 베어 문다. 나도 뒤따라 한입 베어 무니 만두의 짭조름한 속과 구수한 냄새가 입안에 가득 찬다. 나를 태워다 주곤 뭔가 더 도와주고 싶어 밍기적 되는 녀석을 등을 떠밀다시피 돌려 보내곤 바탕 칠할 준비를 한다. 바닥에 캔버스를 늘어놓고 맨 천 위에 본드를 칠하기 시작한다. 잠시 칠한 것 같은데 벌써 해는 기울어 저녁노을이 앞집 지붕 끝에 조금 묻어있다. 음악도 멎은 지 오래, 바탕 칠하느라 등에 배인 땀 땜에 감기가 들까 얼른 옷을 하나 더 껴 입는다. 지난번 감기 몸살로 혼절이 난 이후론 매우 조심을 한다.

맨 천으로만 쒸워진 캔버스를 완제품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 몇 년만일까? 한국에서는 시간 아낀다는 핑계로 다 만들어 논 것을 화방에서 사다 썼는데 이곳에서는 완제품의 질이 너무 떨어져서 직접 만들어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칠하기가 귀찮아 사람을 구했으나 모든 것이 느려터져서 아예 나타나질 않으니 오늘 아침, 갑자기 직접 칠을 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은 것이다. 물론 큰것들은 기술자들이 와서 해결해야할 것들이지만 작은것들은 스스로 해결하기로 마음을 먹은것이다.

칠을 해보니 일차원적인 노동의 즐거움이 있다. 아무 생각 없는 무심한 붓질,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시간,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고 창밖에 흐르는 해질녘의 푸른빛 적막을 바라본다. 그 빛에 마음이 시리다. 다시 음악을 틀고 불을 켜고 차를 또 한잔 마신다. 온몸에 번지는 온기.

낮에 오기로 약속한  캔버스 천을 마저 매어 줄 사람은 아예 안 올 모양이다.매다만 몇게남은 틀만 덩거마니 벽에 기대어져서 그를 기다린다. 이곳에선 우리나라에서처럼 약속 시간을 중시하고 기다리다 보면 혈압이 올라 뒤로 나자빠지는 수가 있다. 이럴 땐 그러려니 하고 잊고 지내는 게 상책이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나타나는 것이다. 며칠만 더 캔버스 만들기에 시간을 투자하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갈 수가 있을듯하니 마음은 더욱 차분히 가라 안고 기운은 충만 하다.

내가 화가가 아니었다면 무엇으로 내 삶을 구원할 수 있었을까? 내가 화가가 안되었다면 무엇으로 내 영혼을 치유할 수가 있었을까? 또, 태생적 분노는 어디로 표출 되엇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도 내가 화가가 된 것은 참으로 탁월한 선택인 것이다.

화가의 길에 대해 지금껏 단 한번의 갈등도 없었다면 사람들이 믿어 주기나 할까?

순식간에 어둠이 내려앉는 작업실에 불을 켜고 캔버스 위에 다시 한번 덧칠할 준비를 한다. 얇게 여러 번, 칠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바탕이 탄탄해지고 붓질할 때 감이 좋기 때문이다.
   동거녀, 몽실이! [2]
   삶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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