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 똥







안창홍 작업노트
AHN CHANG HONG ' WORK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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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화가라서 행복한가?" 2016/09/30
젊은 시절 전시 오프닝 뒤풀이 자리에선 어려이 상석을 차지하든 선배 혹은 선생들, 싫든 좋든 요즘 내 위치가 그렇다. 어느새 세월에 떠밀리어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다. 시간의 무상함이라니. 여하튼 그 무상함 속에서 화가라는 직업을 위해 별 갈등 없이 한 길만 걸어온 삶이라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든 것은 큰 행운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  갈등과 유혹의 소지가 될 만한 싹들이 아예 돋아나지도 못하게 무모한 모험을 벌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론 용기 있는 결단이었다고 스스로 자평도 해본다.

요즘 들어 주변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선생님! 행복하시지요?” 라는 말이다. 물론  ”화가라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든 안 붙든 그 이유를 염두에 두고 한말임에는 틀림이 없을 테고, 이런 인사 속에 담긴 뜻이 내가 살아오면서 화가로서의 이루어낸 성과물들과 시골의 널찍한 작업장과 주변의 환경또한 전원생활이 로망인 도시사람들에게는 결코 무관 하지않은 이유일 것이다. 암튼 그런 질문을 받을 때 마다처음 들어보는 질문인 것처럼 ”나는 화가이기 때문에 행복한가?“하고 끝없이 자문해본다.(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뻔 한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과는 늘 ”글쎄?“이다.

나는 내가 하는 이 일(화가라는 직업)이 나를 결코 행복하게 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어설픈 기대 따위는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이미  오래전, 아주 젊은 시절부터 깨닫고 있었다. 그러면 행복해지지도 않는 이 짓거리를 여태껏 왜 하고 있냐고? 세상에는 말이나 글로 설명할 수 없는 일도 많지 않은가!

바늘등판 같은 고슴도치를 품에 안은 듯 한 통증의 하루하루를 견디든 젊은 날! 궁핍과 외로움보다도 더 힘들었든 것은 화가임을 인식하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을 팽개칠 수 없었든 이유는 아마도, 그림그리기를 포기할만한 용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땐 불안정한 나를 지탱하기위한 유일한 위안이 미술이라는 장막 속을 헤매는 것이었으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미술이 장막인 것은 매한가지이다)

끈적이는 점액질속에 갇힌 내 영혼을 건저 올리는 일, 부조리하고 암울한 세상으로부터 밀려오는 울분과 분노를 삭이는 일,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고 인식하는 일, 이 잡다한 것들을 껴안든 토악질을 하든  미술이라는 방식을 통해 내면을 표출해내지 않고서는 미쳐버릴 것만 나자신을 달래기위한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절대고독이라는 천형의 가혹함 또한 어찌 견뎌 내었을까? (지겨운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세상의 부당함에 딴죽걸기, 분노와 울부짖음에 동조하기,, 연민의 눈물과 동행하고 소통하는 일, 화해를 위해 나 스스로에게 손을 내어 미는 일, 절름발이 영혼을 품에 안고 아득한 통로 저 끝, 희미한 불빛을 향해 나아가는 일.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도 이놈의 통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득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아무튼 그것이 희망의 빛이든, 절망의 빛이든 저승길을 비추는 빛이든, 저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일. 내가, 미술이라는 수단을 내 삶을 건져 올리는 도구로 선택 하지 않았다면  내 불구의 영혼과 삶이 지금까지 온전할 수나 있었을까?  마약 쟁이나 주거불명의 부랑자가 되어 습기 찬 뒷골목을 곰팡이 포자처럼 떠돌든지, 아니면 일찌감치 왔든 별로 되돌아갔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좀 과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으나 나의 기질을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을 테니까).
   개인전 `나르지 못하는 새`(2015 아라리오갤러리)에 부쳐.
   좋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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