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 똥







안창홍 작업노트
AHN CHANG HONG ' WORK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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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창홍의, 2015/10/08
작품이 사건을 기억하는법.
작품, 그것에 어떤 초점을 맞추고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가?  


" 나는 작품을 위해 어떤 시각에 초점을 맞추고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가?

내 작업은 큰 덩어리로 구분하자면 한 줄기에서 뻗친 두 갈래 가지로 이루어져있다. 둘 다 주변부사람들 이야기인데 그 중 하나는 착취와 희생의 역사 속에 잊혀진 사람들의 이야기 이고  또 하나는 현재 우리들의 삶을 노래한다.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지만 기득권과 지배계급의 그늘에 가려진 이들의 삶, 역사란 수많은 민초들의 피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든가! 나는, 역사의 뒤안길, 잊혀진 민중들의 삶으로 역사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들의 삶을 기록물이나 사진자료들을 수집하고 들추어 내어 차용하거나 변용하는 방식으로 제 해석해낸다. 역사의 장막, 망각의 늪에서 이들을 끄집어내어 일종의 제의를 치르는 것이다. 제작 과정 중 이들의 초상들 속에, 폭력과 야만의 역사와 삐뚤어진 권력에 대한 비판과 분노를 슬며시 집어 넣는다. 그것은 암울한 회색 빛 미래에 대한 경종이자 살아남은 자들의 또 다른 희망을 위한 의식행위이다.

또, 한 시선은, 앞서 이야기한 현재를 숨가쁘게 살아가는 주변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백화점 점원, 부랑아,문신가게 사장, 농부,오토바이족 ,동성애자,간호사,친구들,주막집 여인 등등, 생활 속에서 늘 스치고 마주치는 사람들, 이들의 육체와 눈빛을 통해서 자본과 성(性), 권력과 탐욕, 욕망과 허구에 대한 것을 이야기한다. 야만의 문명과 야만의 정치,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와 파열음,비열한 수단으로 움켜진 권력과 부,착취, 불합리하고 모순된 시스템과 사회현상들, 무지와 집단최면, 초상화 속에 이런 모순과 불합리를 정교하게 반영한다. 이 부분을 나 스스로 안창홍의 안창홍式 정치적 발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렇듯, 내 작업의 대부분은  과거와 현재를 오르내리며 망각의 그늘에 묻힌 진실과 현재 삶의 부조리에  주목한다. 특정사건의 큰 덩어리에 가려진 작은 조각들, 희생되거나 말거나 관심 밖으로 멀찌감치 밀려나 있는, 소시민들의 개인 사에 집착한다. 70년 후반부터 지금까지 생애를 걸고 천착해오고 있는 작업 ''아리랑연작'이 바로 그런 류의 작업 중 하나이다.  '아리랑' 연작 중 '기념사진 시리즈'를 그리기 시작하고(1979년) 얼마 후 친구 집에서 들춰본 낡은 사진첩 속에서 발견한 빛 바랜 사진 몇 장, 일제의 강제징용에 끌려가는 학도병인 남편과 하얀 한복(흑백사진 속의 흰빛이 현실 속에서도 흰색이었으리라 느껴졌다)을 차려 입은 어머니의 기념사진 한 장!, 이 비통한 한 장의 사진이 시사하는 의미는 쇠망치처럼 내 가슴을 내려쳤다. 그것은 친구와의 우정으로 이루어진 공감대를 바탕으로, 파탄 난 한 가정사의 진실 속에 다가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나는 사진 속의 친구어머니를 통해서 한과 멍애를 숙명처럼 짊어진  한국여인들의 힘겨운 삶을 본 것이다. 순간 내 가슴속에는 이 상황을  그리고자 하는 열망이 밀려왔고 친구에게서 사진 몇 장을 빌린 후  그 해 여름 내내 작업에  매달렸다. 이 젊은 부부의 우울하고 빛 바랜 사진 위에, 사진이 가진 일차원적인 특성을 뛰어넘어 역사의 폭력에 강탈당한 청춘과 생이별의 아픔을 조형언어로 아로새기기 위해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태어난 그림은  그해인가? 다음 해 봄 인가? 일본 동경, 긴자에 있는 화랑의 그룹초대전 때 첫 선을 보였다(일본 전시를 위해 마음 단단히 먹고 제작한 작품이었으니까). 그때가 교과서 왜곡사건으로 한일 관계가 차갑게 얼어붙은 상황이었으나(35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지만) 오프닝에 참석한 일본작가들 대다수가 부담스러움과 진지함으로 내 그림을 감상했고 그 중 진심 어린 사과를 전해온 작가도 더러 있었다. 전시 후 그림은 프랑스 카뉴 회 화제에 초청되었다가 돌아왔다. 대부분 나의 작품은 실제 현상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지만  사건을 다룬 작품들 중 또 기억나는 작품이 있다면 1980년작 '그날의 기억'이라는 그림이다. 부산시절, 부마민주항쟁당시, 항쟁의 중심지에 있든 작업실에서 최루탄에 부어오른 눈을 비비며 무지비한 개머리판과  군홧발에 쓰러져가는 시민들의 모습을 울음 섞인 분노로 그려 되든 모습이 아련하다.

또 다른 갈래인 인물화 작업을 할 때도 모델을 구하러 직접 거리로 나선다. 간혹 지인에게 소개받기도 하고 즉석 프러포즈로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직접 프러포즈할 때가 더 많다. 사실 직업 모델이 아닌,바쁘게 살아가는 생활인들을 시골 작업실로 불러 들이고 남녀 노소 관계없이 옷을 입히거나, 벗기거나 하는 행위자체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쨌든 그런 과정의 노력을 통해 의도된 포즈로 앉거나 서있는 모델들의 몸을 통해 모멸과 불화의 이 시대를 증언하고 발언한다.

나는 늘, 그림 속엔 시대정신이 녹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먼 훗날 한 작가의 그림을 통해서 그 시대의 통증을 거울처럼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어차피 모든 그림이 시대의 반영 물이라면 보다 적극적인 참여가 바람직한 화가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기득권을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지배계급의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옹호하는 미술이 아닌, 또 다른 상반된 시선,이세상의 미술이 정치와 연결되지 않은 미술이 어디 있든가! 화가의 정직한 눈에 의해 기록된 저항과 자유정신이 깃든 삶의 미술이야말로 화가가 남겨야 할 유산이기도 하고 화가로서의 자존을 지키는 길이 아니겠는가.

전세계를 수렁으로 빠터린 금융자본주의의 폭력, 모든 정신적 가치들을 돈의 똥꼬 아래로 전락시켜버린 물신주의의 힘과 더욱 피폐해진 우리들의 삶, 예술이라는 허울의 그늘에 숨겨진, 흥행과 부를(副)를 위한 제국주의의 또 다른 주도권 싸움, 흥행의 숨가쁜 호흡에 맞춰 발 빠르게 움직이는 글로벌 형 미술, 이 시대의 미술이 진정!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데 일조할 수 있기나 한 것일까?" "예술이 사회와의 소통을 위한 또 다른 수단임이  맞는다면 어떤 가치로움을 위해 소통하려는 것인가?" 요즘 나는 수도 없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첨단 하이테크시대의 넘쳐나는 정보에서 등돌리고 앉은 나는 아직도, 재래식 방식을 고집 피운다. 한 사람이 사장과 직원을 겸직하는 소규모 가네공업 공장을 꾸러 가듯이 캔버스에 밑 칠을 하고 팔레트 청소를 하고 새벽마다 한 움큼씩의 붓을 빠느라 노동의 시간을 보낸다.침침한 눈 위에 돋보기 안경을 걸쳐놓고 또 다른 돋보기를 들이댄 체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그리기에 열중한다.비록, 생산성은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림도 생물과 같아서  화폭 속에 작가 자신의 땀과 노고가 배어들지 않고서는 사산한 자식처럼 죽은 그림이 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월간 public art 10월호 special feature에 실린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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