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 똥







안창홍 작업노트
AHN CHANG HONG ' WORK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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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 아홉 번 쩨 개인전에 부쳐 201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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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제작과정                                                               '슬픈 여름' 2014  천위에 아크릴릭  346cmx136cm


안창홍이 꽃을 그리다니, 어떤 꽃이 나올까? 목구멍 때문에 야합한 건가? 금년 초 개인전 준비를 시작할 즈음에 몇몇 사람들이 궁금증 반, 별 수 없군 하는 비아냥 반 섞인 농을 던졌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그냥 무심하고 짧은 대답으로 응수하고 말았다. “수십 년간 사람만 그리다 보니 지루해서 그냥 외도 함 해보는 거지 뭐!” 사실은, 무심한 듯 던진 대답과는 다르게 이번에 발표되는 안창홍의 ‘뜰’ 연작들은 장고의 담금질을 통해서 길어 올린 결과물들이다. 언젠가는 자연을 그리겠다는 생각을 시작한 것이 선바위마을로 작업장을 옮긴 직후부터니까 이번 전시가 있기까지 25년, 세월이라 해도 좋을 만큼 긴 시간의 탐구와 실험을 거처 왔다는 말이다.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작업실 앞 마당을 가꾸는 데만도 2년여가 걸렸다. 그 때문에 몇 해 전부터 이른 봄이면 마당에 나가 한 두 달씩을 흙에 코를 박고 살았다. 부드러운 흙을 몇 차 실어와 마당 한 켠에 부어놓고 직접 퍼다 나르느라 비지땀을 꽤나 흘렸다. 물론 1주일에 한번 반찬거리 챙겨서 들어오는 아내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흙을 퇴비와 섞고 펴고, 여러 종류의 화묘와 씨앗들을 정성 들여 심고 물을 주고 가꾸기를 몇 년, 첫 해에는 겨울이 오기 전에 구근을 미처 캐내지 않아 몽땅 얼어 죽게 한 일도 있었고, 앉은뱅이 연한 풀꽃들이 드새고 웃자라는 키다리 꽃들의 그늘에 가려 펴보지도 못한 채 창백하게 시들어버리는 일들도 있었다. 이렇게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철마다 피고지는 꽃들의 영고성쇠를 관찰하였다.

처음, 꽃밭을 만들며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든 모양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꽃들은 스스로 번식하고 소멸하며 제 각각의 생존방식으로 치열하게 서로의 터를 잡아갔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가 존재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다른 생명들이 서로 뒤엉켜서 치열한 생존의 몸부림으로 뒹굴어야 하는지 나의 잔머리가 이런 이치를 깨닫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람, 햇살, 습기, 풍뎅이, 벌, 나비, 지렁이, 너무나 많은 벌레들, 작은 새들, 그리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시간! 마치 인간의 세상사를 옮겨놓은 듯 한 이 흥미롭고 변화무쌍한 뜰의 생태를 관찰하는데만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이다.

비록 작은 터의 꽃밭이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의 생태는 거칠고 완고하면서도 섬세하고, 냉혹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공평했다. 그렇게 관찰만으로 2년을 보냈다. 나는 꽃밭을 통해 내가 바라보는 세상사를 녹여내고 싶었고, 또 작업방향을 그렇게 끌고 갔다. 노력을 기울이는 만큼 감정의 파노라마는 내가 그리고자하는 자연의 형태 속으로 스며들었다.

뜰에는 많은 종류의 꽃들이 피고 지며 나의 시선을 사로 잡았지만 이번에 그려낸 대다수의 그림들은 맨드라미이다. 나는 화폭에 옮기기 위한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림으로 그려지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대상에 충분히 익숙해질 때까지 머리와 가슴 속에 품고 있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기간이 몇 년씩 걸릴 때도 있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머릿속에서 때를 기다리며 숙성되고 있는 그릴 것들 중에서 잘 발효된 상태로 편안하게 제일 먼저 끄집어 내어진 대상이 맨드라미라는 뜻이다.

개인전 준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가 허구 많은 꽃 중에서 왜 하필 대상이 맨드라미인지, 나에겐 맨드라미가 어떤 느낌인지 물어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내 대답은 이랬다. “내 눈에 의해 관찰된 맨드라미는 느낌이 식물이라기보다는 동물에 가깝다. 마치 정육점 진열장의 붉은 조명등 아래 놓여진 살코기 같은 느낌! 꽃의 형태 대부분이 좌우가 비대칭이고 괴이한 데다 원초적 느낌의 현란하고 강렬한 붉은 빛, 질긴 생명력이 느껴지는 다양한 모양의 억센 줄기와 다양한 색의 잎들. 온 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듯이 시들어갈 때의 처연함. 망연자실, 꽃이긴 한데 꽃이 아닌 듯한 느낌”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2014년은 나에게 가혹한 해였다.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무차별적인 학살, 여객기피격으로 사망한 259명의 사람들, 이라크 내전, 슬픈 아프리카 빈국들의 끝없는 전쟁과 살육, 애볼라로 사망한 5000여명의 사람들, 전세계를 수렁으로 내몰고 있는 이 모두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약육강식의 경제논리가 모든 가치의 우위에 있는 광기와 탐욕의 결과물들이 아닌가! 그리고 잊혀질까 두려운 세월호 사건.

세월호에 갇혀 197일 동안 바닷속에 수장되어있던 지현이가 열 여덟번째 생일날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이렇게 슬픈 생일이 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갖 피기 시작한  꽃망울이 대다수인 302명의 목숨을 수장시킨, 더러운 음모로 가득한  이 잔혹하고 슬픈 사건이 개인전 준비를 하는 동안 나를 단 한 순간도 내버려두지 않고 괴롭혔다. 세월호사건이 처리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밀려오는 자괴감, 어른으로서의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힘겨운 나날들이었지만 기억에서 멀어지는 것 보다는 차라리 나았다. 간혹 마음이 평온해 지는 날은 마치 지은 죄가 들킨 듯이 심장이 느닷없이 쿵쾅대곤 했다. 그런 슬픔과 우울이 몇몇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들었고 또 그렇게 그리려 애를 썼다. 여름 내내 땀 흘리며 무겁고 우울한 큰 그림들을 마무리 하고 나니 에너지가 소진된 듯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앓아 눕기를 여러 번, 그 와중에도 소품들은 밝고 따뜻하게 그리려 나름 애를 쓰며 아침부터 이른 새벽녘까지 그리기에 열중했다. 커다란 두상도 입체로 한 점 만들었다. 제목을‘눈먼 자들의 도시’라 붙였다. 영화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영화내용은 사람의 피를 먹고 사는 좀비들의 세상이야기이다.

얼마 전 새벽녘 취중 문자를 카톡으로 몇몇 친구들에게 날렸다.
다음날 읽어 보니 이런 글귀였다.
  
빛과 그늘의 틈,
욕망과 절재의 틈,
물질과 정신의 틈,
선과 악의 틈,
이곳과 저곳의 틈,
이 세상의 모든 상반된 가치의 경계.
예술은 규범과 단정의 부산물이 아니라 모호함과 불안함과 갈등의 긴장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라야 더욱 아름답다.

11월 어느 날 선바위마을에서 안창홍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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