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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편함의 성공 - 안창홍의 대형 흑백 누드/ 성완경 2009/05/31
포커스/ 안창홍 [시대의 초상]展 2. 28~5. 5 부산시립미술관/ [흑백거울]展 5. 20~6. 28 사비나미술관

불편함의 성공 - 안창홍의 대형 흑백 누드

글 / 성 완 경

안창홍이 최근 두 차례 개인전을 부산과 서울에서 연달아 열었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시대의 초상]전은 안창홍이 최근에 그린 미발표 신작인 흑백의 대형 누드화 <베드 카우치> 연작 6점과 2000년대 중반 이후 발표했던 <49인의 명상> <사이보그의 눈물> <사이보그> <자연사박물관> <헤어스타일 콜렉션>  <부서진 얼굴> <가족 사진> <얼굴> 등 여러 연작들, 그리고 사진 콜라주 작업, 인물, 자화상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모두 합쳐 170여점이 되는 큰 규모의 전시였다. 이것은 부산이 봉생문화상(2000)과 부일문화대상(2001)에 이어 이 지역 출신의 작가에게 바치는 세 번째 오마주이자 부산시립미술관이 당대의 비아카데미즘적 중견작가를 끌어올린 본격적 기획전으로 매우 의미가 큰 전시였다고 할 수 있다.  

사비나미술관의 [흑백거울-마치, 유령이나 허깨비들처럼]전은 위 <베드 카우치> 중 4점에다가 금년에 추가로 그린 신작 2점까지 합쳐 총 6점의 <베드 카우치>연작에 흑백 인체 그림(대부분이 누드) 4점과 드로잉 4점을 추가하여 총 14점의 흑백그림만을 전시한 것이다. 그것들이 (큰 작품이 들어올 수 있도록 최근에 개보수 공사를 끝낸) 사비나미술관의 공간 속에서 (마치 그림을 주인공으로 한 무대디자인처럼) 디스플레이 되면서, 감상의 극적 효과와 명상적 분위기까지 만들어준 전시였다.

<베드 카우치> 연작은 작가가 작년과 금년에 주변 인물들을 누드 모델로 섭외해서 그린 것이라 한다. 이 대형 연작은 강력하고 매혹적이며 그리고 여기서 언급될 가치가 있는 어떤 기이함과 긴장이 있는, 일종의 파열과 불편함이 있는 작업이다. 나는 그 파열과 불편함이 혹은 긴장과 기이함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안창홍은 ‘세상을 향해 내뱉는 화가의 당당한 힘’, ‘화가로서 겪어온 홀로 서는 과정’, ‘왕성한 작업량’으로 이미 이미 많은 주목을 받는 작가이다. 그의 작업에선 흐름과 순발력, 본능과 집중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기애와 미적 쾌락, 데카당스와 도발도 그의 중요한 표지이다. 그는 인간의 상처와 고독에 민감한 작가이다.

그의 작업에 주변부적 인간들(부랑아, 창녀, 호색남, 동성애자, 여장 남자, 유한마담, 권력자, 양아치, 어른을 닮은 어린이 등)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선 또한 공공의 윤리와 허위의식에 대한 도발, 정치와 권력에 대한, 천민적 욕망에 대한 냉소를 자주 볼 수 있다. 그 도발은 매우 강력하고 은근짜적이면서 파괴적인 경우가 많다.  

대형의 흑백 누드 그림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이 <베드 카우치> 연작을 처음 보았을 때 매혹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꼈다. 그 불편함을 소화하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 이 불편함이 그 작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무방법의 방법과 그리고 그 속에 내장된(극도로 주관적이고 정치적인) 일종의 ‘시대정신’이 지극히 안창홍적이고 불안하며 날카롭고 진지한 것이라는 점을 수용하는 데 좀 시간이 걸렸다는 말이다.

<베드 카우치> 연작은 소재와 형식은 분명 누드화라는 장르의 것인데 그 장르의 기본 코드(포즈, 인테리어와 소도구, 분위기 등)를 철저히 뒤 엎거나 위반하고 있다. 인테리어는 화가의 작업장 상황인데 거의 폐공장 수준이다. 더럽고 어지렵혀진 바닥 그 한가운데 베드 카우치가 놓여 있고 인체가 그 위에 얹혀 있다.

베드 카우치라는 이 소품과 인체의 관계는 그 자체가 포르노이리만큼 불편하고 ‘부적절’하고 생뚱맞다. 한마디로 불편하다. 게다가 전체적 미장센을 보면 극도로 장식이 배제된 대단히 즉물적 상황이다. 단지 화가의 작업장이라는 그 ‘여기, 지금’의 극도의 썰렁한 상황이 있을 뿐이다. 모델은 그가 교섭하고 설득하여 그 자리에 모시게 된 말하자면 그의 ‘꾐’에 빠진 지인 등 아는 사람들이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 대부분은 벗은 몸이다. 그들의 몸은 물체처럼 (마네의 올랭피아의 노란 고무질 뱃가죽보다 더 뻔뻔스럽고 물질적인 느낌이 들만큼) 즉자적, 즉물적으로, 그리고 또한 건축물처럼 무겁고 장엄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과 정면 응시의 시선에서는 포르노적이라든가 관능적이라는 것을 뛰어넘는, 애초에 그런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어떤 몰두와 집중, 자발적인 헌신과 노출의 당당함이 있다. 돌연한, 돌발상황적인, 거의 우스꽝스러운 그런 상황인데 평온함이 있고 장엄함이 있다. 기존의 누드화와 너무 이질적인 그 극도의 상황, 불편함과 이질성의 상황인데 그런데 숭엄함이 느껴진다.  

안창홍은 평소에 다소 꼬부라진, 삐딱하고 냉소적인 시선과 정치적 시선을 내장한 작가였다. 그런 시선으로 80년대, 혹은 90년대의 시대분위기를 우울하게 그리고 화려한 데카당스로 그려온 작가였다. 일탈적 화려함에 내재된 현실 비틀기, 꼬부라진 시비걸기의 눈이 있었다. 안창홍의 이 흑백 누드화는 누드화라는 장르적 속성, 그리고 스케일과 즉물적 사실주의 등으로 과거의 그의 이런 속성들과 매우 다른 성향의 작업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주목거리다.

그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 같았던 자존과 냉소에 바탕한 그 비릿한 냄새의 센티멘탈리즘과 로망을 넘어선 것일까? 그런데 그의 많은 작품에서 18번인, 살짝 꼬리를 보여주는 에로티즘적, 데카당스적 정서는 아직 여전하기도 하다. 앞서 글머리에 나는 그의 이 전시가 불편한 전시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 불편함이야말로 바로 이 흑백 누드화들의 최대의 성취이고 그의 작업의 진일경을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지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질적, 정치의식적 연속성도 여전하다. 아니 더 심화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의 이 기이하고 생뚱하고 장대한 흑백누드들이 최근의 한국의 사회정치 상황의 그것들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이해했다.

안창홍식 도발의 미학과 정치의식은 계속되고 있고 달라지고 있는 것은 그 차원과 스케일인 것 같다. 그의 이 새로운 작업들이 로칼 모더니즘 혹은 로칼 아방가르드의 새로운 유형의 출현을 알리는 사건이 될지 계속 주시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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