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 똥







안창홍 평론모음
AHN CHANG HONG ' CRITIC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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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의 개인에게 바치는 오마주, 우울하면서 따듯한 사랑./최태만 2009/02/13
개인에게 바치는 오마주, 우울하면서 따뜻한 절망

최태만/미술평론가


죽음을 이긴 독종

2007년 팔월 초, 가족을 태우고 해인사 백련암을 방문했을 때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안창홍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차가 막 백련암으로 접어드는 가파르고 굽은 숲길로 진입한 무렵이라 운전 중인 나로서는 길게 통화할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속으로 ‘용건만 간단히’를 기대하며 그가 먼저 전화를 끊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나의 희망과 상관없이 그는 완강하고 단호하게 자기가 해야 할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가 중국에 작업실을 마련했다는 것은 이미 들어 알고 있던 터였지만 갑자기 귀국하여 전화한 것이 이상했다. 그런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심하게 들려주는 그의 귀환이유가 사람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폐암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휴대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너무도 태연하고 침착한 소리가 거짓말처럼 들리는 순간이었다. 조기에 발견했기 때문에 수술과 항암치료를 마치고 지금은 회복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가 병마를 이겨낸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하기 위해 느닷없이 전화를 건 것은 아니었다.

전화를 한 요지는 1997년에 출판한 나의 안창홍 작가론인 『어둠 속에서 빛나는 청춘』의 개정판을 내자는 것이었다. 이 책을 낸 후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나에게 집요하게 개정판 집필을 요구하곤 했다. 천성이 게으른 나로서는 재집필에 대한 욕구는 있었으나 선뜻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차일피일하던 중이었는데 더 이상 건성으로 대답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는 어느 출판사에서 자기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같이 만나자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 달여 후 그 출판사로 찾아갔을 때 3월에 수술을 했으며,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아주 즐겁게’, 마치 아이들 소풍가듯 마치고 작업실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표정이 하도 천연덕스럽고 무심하여 불과 몇 달 전 암수술을 받은 사람인지 의심될 지경이었다. 그는 식사와 함께 반주로 포도주 한 잔도 곁들였다. 병마를 피하기보다 그것과 마주함으로써 이길 수 있다는 자심감이 없었더라면 사양했을 술을 마시는 그가 나에게는 참 속이 편한 사람으로 비쳐지는 장면이었다.

많은 작가들에게 나태는 마치 삶의 미덕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안창홍 역시 자신의 나태에 대해 스스로 책망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는 나태를 무절제로 연결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그의 작업량은 그가 결코 나태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물증이다.태평스러워 보이지만 자기확신으로 똘똘 뭉친 남자. 안창홍은 간혹 자신의 거친 삶에 대해 들려주곤 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를 지켜봐온 나는 그가 거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세상 그 어떤 유혹이나 회유(懷柔)에도 굴복하지 않을 당당함과 오만에 가까운 자기신념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와 오래 사귀지 않은 사람에게 그의 당당함이 오히려 안하무인으로 비쳐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스럽게 조기발견하여 치유가 가능했다거나 현대의학의 발달 운운할 것 없이 그는 운명을 이겨낸 ‘독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거친 삶’ 속에 터득한 긍정의 정신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속으로야 어떨지 모르지만 그는 좌절하는 법이 없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무섭도록 저주를 퍼붓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능청스럽게 자기예찬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안창홍이다. 만약 이러한 자기애가 근거 없는 것이라면 피식 웃고 말 일이지만 그는 분명하고 합리적인 논리로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울 충분한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때로 그의 이러한 독선에 가까운 신념을 존경과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나에게 안창홍이야말로 경이로운 경외(敬畏)의 대상인 것이다.


그는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을 대할 때도 지나칠 정도로 단호하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자기 속내를 다 드러내지만 한번 눈 밖에 난 사람은 아예 상종을 하지 않을 정도로 입장과 태도가 분명하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이런 태도는 사회적 결격사유가 될 수 있다. 굳이 타협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지만 살다보면 싫은 것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는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것과 대립하며 스트레스받기 보다 아예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무서운 부분이다.

그가 오랜 기간을 단독자로 생활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림에 승부를 걸었기 때문에 자기에게 패배하지 않기 위해, 자기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작업에 전념하는 것 못지않게 그에게 그림 그리는 일은 불편한 사회적 관계에서 누적된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돌파구이기도 하다. 화려하면서 퇴폐적이고, 도발적으로 변태적이면서 우아한 그림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그의 모난, 그러나 적당히 타협할 줄 모르는 그의 과도하게 발육한 자기애적 성격에 기인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그를 에고이스트로 보아서는 안 된다. 퇴원 후 작업실에서 요양과 작업을 병행하며 기록해 놓은 작업노트를 보면 그의 예민한 감각이 자기 내면으로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로 향해 열려있음을 확인하게 만든다.

초록빛 눈물과 초록빛 아픔,
초록빛 절망과 초록빛 희망,
초록빛 사랑과 초록빛 이별,
초록빛 연민과 초록빛 회환,
초록빛 증오와 초록빛 용서.
모나고 찢긴 모든 갈등들이 한데 녹아드는 안식의 빛깔, 초록.
(2007년 5월 26일 작업노트)

이 글은 큰 병을 겪고 난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감정의 기복을 잘 드러낸다. 잦아드는 정서적 긴장과 그것을 이완시켜가는 과정을 압축한 이 글을 통해 그의 작품이 지닌 성격까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녹음이 짙어가는 들판을 바라보며 적었을 이 글은 아픔, 절망, 증오를 이겨내는 희망, 연민, 용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작품을 지배하는 공격적인 난폭함의 대단원이 파국적 파멸이 아니라 수용과 화해를 위해 거쳐야 하는 고통스럽지만 필요한 폭로이자 고백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씬 풍겨나는 퇴폐적인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민한 촉수는 항상 사회를 향하고 있다. 그가 작품을 통해 줄곧 공격한 것은 인간의 야만과 위선이었다. 도발적이면서 거침없는 공격의 강도가 높을수록 작품은 더욱 비판적인 내용으로 넘쳐났다. 민감한 주제를 직설적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외관상 퇴폐적으로 비쳐질 충분한 이유를 지닌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악마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많은 도상들이 한번이라도 정의(正義)에 대해 외치거나 설득한 적은 없다. 그는 모순으로 가득 찬 사회를 고발하는 윤리교사가 아니라 그것의 실체를 해부하고, 그 잔해를 제시함으로써 자신이 위선적인 인간이나 사회에 대해 가진 불만을 폭로하였던 것이다. 만약 그의 작품이 단지 폭로만으로 그쳤다면 그의 작품의 생명은 그만큼 짧았을지 모른다. 그의 폭로가 우리의 의기소침함이나 문제의 노출을 회피하려는 허약한 정신상태를 마구 뒤흔들어놓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속으로 뜨끔해 하면서도 그의 저돌적인 용기에 열광하는 것은 아닐까.


죽음의 도상

그러나 그의 그림을 지배해왔던 것은 역시 죽음의 유혹이다. 초기부터 최근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의 그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죽음의 음습한 그림자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때로는 난폭하고, 때로는 낭자하게 죽음의 정서가 배어난다. 그 죽음은 늘 관능과 함께 한다. 에로스와 타나토스. 미술사에서는 이미 오래된 주제이다. 서구미술사에서 ‘춤추는 죽음(death macabre)’은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죽음이 네 옆에 있음을 항상 기억하라(memento-mori)’는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유혹하는 죽음의 신, 하늘거리는 촛불, 만개한 꽃이 담긴 화병, 모래시계, 해골 등은 모두 바니타스(vanitas), 즉 삶의 유한성, 그 덧없음을 상징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 해골이 눈을 감고 있는 젊은 여성의 뺨을 핥고 있는 <입맞춤>은 독일 화가 그리엔(Hans Baldung Grien)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유혹하는 죽음’을 통해 청춘의 덧없음, 언젠가 늙고 병들어 죽어갈 운명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창홍의 작품들은 대부분 서구미술사적 맥락에서의 회화적 수사(修辭)를 거부한다.

그에게 상징과 알레고리, 은유는 지적 현학이거나 사치, 심지어 죽음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는 죽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서 농염한 에로티시즘과 뒤섞인 죽음은 도덕적이거나 교훈적인 설득과 관련이 없다. 사도마조히즘의 몽환과 넘쳐나는 퇴폐 위로 엄습하는 죽음의 유혹은 때로는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형태를 통해, 때로는 화려하면서 신경질적인 색채를 통해, 때로는 잔인하며 파괴적인 주제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이러한 죽음의 도상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거둬가는 낫을 휘둘러대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Kronos)나 죽음의 신 타나토스에서 연상되는 죽음의 폭력을 예찬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죽음을 삶의 종결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죽음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죽음은 삶과 밀착해 있기 때문에 쉽게 망각하거나 끔찍하도록 공포스러울 수 있다. 자전적인 주제로부터 사회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안창홍은 늘 이러한 죽음의 중의적 측면에 집중해 왔다. 죽음의 주술행위를 집행하는 사제의 열광적이면서 난폭한 카니발리즘과도 같은 광기어린 에너지에 몰입해 있으면서도 정작 그는 항상 그 광란의 제의(祭儀)에서 방관자처럼 태연하게 죽음을 재연해왔다. 말하자면 그는 ‘춤추는 죽음’에 자신을 내맡긴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죽음의 폭력을 열정적이지만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회색의 암울한 인물화로부터 기이하고 잔혹한 파괴의 풍경에 이르기까지 그가 표현한 죽음의 도상은 끔찍하면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다소 신열을 앓게 만들었던 과거의 죽음의 도상과 비교해 볼 때 2003년에 발표한 <죽음의 컬렉션>은 주검을 통해 죽음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제기한 작품으로 기억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자연사 박물관 연작>은 박물관에 넘쳐나는 주검, 포르말린 속에 표백된 채 저장되거나 혹은 화석의 형태로 전시되는 숱한 주검을 일상의 주검으로 연장하고 있다. 그것은 대체로 그가 주변에서 발견한 시체들이다. 그 속에는 식물도 있고, 곤충도 있으며, 슬리퍼처럼 폐기된 물건도 있다. 이 모든 대상들은 동일한 규격의 채집상자에 봉인된 채 전시된다. 여기에는 죽음의 공포가 없다. 잔인함도 없다. 수집, 분류, 보존된 물체라는 점에서 이 채집상자들이야말로 작은 자연사박물관이자 작가에 의해 기록된 일상의 죽음이다. 젤라틴상태의 부패과정이 제거된 이 죽음의 박물관은 그러므로 악취도 풍기지 않는다.

인간의 죽음을 다룬 작품들에서 볼 수 있었던 잔혹한 비장미를 대신하여 순수한 주검 자체만 제시함으로써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숱한 죽음의 역사는 표본상자 속에 저장된 객관적인 기록이 된다. 여기에는 슬픔도, 회한도 없다. 이 냉정함은 역설적이게도 삶을 숭고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우리가 자연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원형이 아닌 껍질의 흔적만 간직한 이 박제된 주검의 이미지를 통해 시간이란 사슬이 우리를 결박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그것으로도 안창홍이 우리에게 무엇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은 자연과 시간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작품에서 볼 수 있었던 참혹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죽음의 이미지가 이 죽음의 박물관에서는 생명의 유한성을 통해 그것의 소중함을, 나아가 우리의 삶이란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이 아님을 깨닫게 만드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익명의 개인에 바치는 오마주

2004년 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에 안창홍은 <49인의 명상>을 출품했다. 총 49개의 패널로 제작된 이 연작은 전시공간의 제한으로 모두 전시하지 못했지만 초상을 주제로 한 안창홍의 작품 중에서 새로운 전기를 제공한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폐업한 사진관에서 입수한 빛바랜 사진 위에 채색을 한 이 작품들은 다양한 필요와 목적, 이유로 자신의 초상을 기록해 놓은 평범하고 익명적인 사람들에게 바치는 오마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래 전에 촬영된 것일 뿐만 아니라 사진관 서랍 속에 보관되던 사진 중에서 추출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작가 자신도 알 수 없다.

이 초상들은 한 시대를 살았거나 혹은 지금은 어디에선가 자신들의 삶을 꾸려가고 있을 개인들의 잊어진 시간, 그것도 박제된 기억을 부활시킨 것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그 기억된 시간은 특정인의 특정시간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해석되고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여기서 작가의 상상력과 작품을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틈입할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된다. 그는 이 인물들의 눈을 모두 지워버림으로써 해석의 틈을 더 벌려놓는다. 모두 명상에 잠긴 듯한, 혹은 죽음의 긴 시간에 의해 결빙된 듯한 이미지는 모티브가 된 사진의 퇴락한 색채만큼이나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며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기억을 보는 사람의 관점으로 재생하도록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진을 이용해 그 속에 각인된 인물의 형상을 지워버리는 작업은 그의 초기 작업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얼굴을 지워버리고 남은 공백을 마치 가면처럼 처리한 초기의 작업은 공포와 매혹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면서 안창홍 특유의 독창적 마력을 물씬 풍기는 것이었다. 절규하듯 입을 딱 벌린 인물들은 지난 세기 동안 불안과 절망, 공포의 시대를 살았던 개인들의 가위눌림을 극적이면서 숭고하게 보여주었다. 더욱이 어두운 회색조는 이 작품들이 지닌 비극적 정서를 고양시키며 앨범 속에 결박된 시간을 현재로 불러내는 비상한 힘을 발휘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는 단체로 촬영한 기념사진을 확대하여 이미 과거가 된 역사의 현장을 호출내기도 했다. 이처럼 안창홍에게 있어서 사진을 바탕으로 한 작업의 역사는 오래된다. 기념사진에 대해 주목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작가는 한 작업노트에서 “오래된 한 장의 기념사진은 딱딱하고 건조한 사실과 기록을 뛰어넘어 독립된 서정과 주술의 매개물로 존재한다. 사진은 그 속에 갇힌 개인사적 시간과 사연을 뛰어넘어 사진 자체로서의 독립된 사회성을 갖는다. 그 독립된 에너지의 매혹 때문에 나는 사진에 이끌린다”(2007년 9월 3일 작업노트)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사진작업은 사진 속의 개인들의 역사를 사회적 기억의 정치로 확장시키려는 의지의 소산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공식기억에 의해 가려진 시간의 이면을 들춰내는 작업임과 동시에 그것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49인의 명상>은 과거에 그가 했던 작업과 성격을 달리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상 기념사진의 경우 사진의 한 부위에 그 단체의 성격과 촬영일자를 기록해 놓기 때문에 작가에 의해 변형이 가해졌다 하더라고 사진이 촬영된 맥락을 추적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49인의 명상>은 그러한 기초 정보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해석의 가능성을 더 열어놓은 것이다. 이른바 증명사진이라 불리는 사진 속의 표정을 지우고 눈을 감기는 행위는 이 사진의 익명성을 더 강화하는 부분이다. 적어도 증명사진을 촬영할 때 눈을 감는 것은 금기에 해당한다. 눈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증거일 뿐만 아니라 성격과 감정상태를 드러내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그는 이 특정한 인물들의 눈을 모두 감겨버림으로써 특정인을 지시하는 증명사진의 특징을 박탈한다. 그렇다고 개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개인에게 바치는 오마주는 초상 위로 날고 있는 나비의 형상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때 나비는 현재와 지나간 시간을 연결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또한 사진 속의 인물들의 입술을 붉게 칠하는 화장술은 창백하게 고착된 개인들의 초상을 영속하는 망각, 곧 죽음의 미망 속에 가둬놓는 것을 거부한다.

여기에서 그의 초상작업이 개인사와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사회를 연결시키려는 의도로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개인이 지워진 그 공백에 시대의 기억을 주입하여 개인의 역사를 시대와 사회의 역사로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 대상들을 통해 망각된 시대, 이미 과거라고 밀쳐놓은 불안하고 우울한 시대의 사회적 초상을 하나의 표상으로 각인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49인의 명상>은 독립된 시리즈임에 분명하지만, 그는 그것으로 이 작품을 종결하지 않고 사이보그 연작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동일한 인물이 잡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불현듯 출현하는 이 연작에서 눈을 감고 명상하던 사람들이 복제인간처럼 기계적인 형상으로 출몰하고 있는 것을 본다는 것은 불편하다. 주체가 소멸한 것이 아니라 낯선 도상, 그것도 클론(clone)처럼 동일한 대상이 기계적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불편하다. 이 불편함은 안창홍의 작품이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이기도 하다.


최악의 그림, 최상의 혹독한 아름다움

절망의 회색, 혹은 최악의 그림.”
(2008년 12월 20일 작업노트)

최근 안창홍은 흑백의 인물화 시리즈를 완성했다. 침대 앞에 놓는 베드 카우치에 누어있거나 앉아있는 모델을 그린 이 그림들은 그 규모의 장대함 때문에 보는 사람을 압도할 뿐만 아니라 흑백의 무채색이 주는 장중함 때문에 엄숙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놀라운 사실은 이 일련의 작품들이 불과 일 여년 만에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그의 생산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작년 여름,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밑그림만 그려놓은 상태였는데 그는 불과 반 년 만에 수점의 대형인물화를 그려내었던 것이다.

그는 일련의 검은 그림을 제작하면서 “예술은 불규칙과 불면의 산물인가? 아! 그래도 너무나 달콤한, 규율과 원칙과 상식의 전복을 통해 길어 올린 검은빛의 향기”(2007. 8. 7 작업노트)라고 적었다. 그의 작업노트는 도발적이면서 장중한 아름다움을 지닌 누드화가 나타나게 된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실적인 재현에 충실한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 역시 전통적인 규범을 위반하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듯 관람자를 향해 자신의 육체를 숨김없이 드러내는 공격적인 자세도 그렇지만 누드화의 전통에서 벗어난 포즈와 그들의 시선에서도 위반의 혐의가 포착된다. 비록 작가에 의해 연출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유혹하는 시선이 아니라 노려보는 시선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자신을 ‘보여지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보는 주체로 파악하고 있는 모델들의 의식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즉 그들은 그림 속에 다소곳하게 누워있는 양순한 모델이 아닌 것이다. 이 흑백회화 속에 모델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그가 공을 들여 섭외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동료 화가의 옷을 벗긴 것이야 동료의식의 결과로 볼 수 있지만, 젊은 여성을 벌거벗기거나 그의 작업실이 있는 마을의 촌로(村老)를 벗기는 일은 작가 자신에게나 당사자 모두에게 하나의 모험이자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그들 대부분을 예술이란 제단 앞에 나체로 세웠다.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나체임에도 불구하고 에로틱하지는 않다. 특히 손씨란 노인의 깡마른 육신은 평생 농부로 살아온 그의 삶이 기록된 주름 때문에 장엄하게 보이기조차 한다. 젊은 여성을 모델로 한 누드 또한 관능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우선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흑백의 무채색이 벗은 육체를 훔쳐보고자 하는 관음증적 욕망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물보다 크게 재현된 인체가 관능적 아름다움을 넘어 육체를 경건하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이 누드화는 건강한 육체에 바치는 헌사(獻辭), 특정한 인물을 모델로 세웠다 할지라도 그를 통해 이름 없는 모든 인간, 자신의 삶에 충실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존경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그는 “우울한 침묵 속에서 그려내는 회색빛 절망”이란 표현을 했다. 그에게 이 그림들은 최악이다. 그러나 이 작품 앞에 서면 그의 검은 그림이 절망의 회색 혹은 최악의 그림이라기보다 더 이상 곤혹스러울 수 없도록 혹독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좁고 불편한 카우치에 의지해 있으면서도 이들의 도전적인 표정과 자세는 자신의 벗은 육체를 당당하게 드러냄으로써 ‘사회적 육체’가 된다. 더욱이 이들의 육체가 웰니스 센터에서 가꾸거나 성형한 육체가 아닌 까닭에 그 당당함은 이 그림 속에서 더욱 빛난다. 작가가 말한 ‘검은 빛의 향기’란 바로 이 당당함으로부터 발원한 것이 아닐까.


이 글을 쓰기 전, 다시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자신이 요즈음 하고 있는 도보여행에 대해 들려주었다. 수술과 치료를 받은 후 장기여행을 대신해 선택한 그의 운동법이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 차량이나 등산객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임야의 소방도로, 오솔길을 천천히 걷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연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 긴 산책을 통해 그는 단지 자연을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미세한 부분을 경험한다고도 했다. 그것을 통해 자연의 광활함이나 순리뿐만 아니라 그 속에 내재한 요염함까지 느낀다고 하니 안창홍의 발달된 촉수가 자연의 피부를 더듬으며 촉각으로 받아들인 그 요염함을 어떻게 드러낼지 자못 궁금하다.

자전적인 것으로부터 인간과 문명으로, 사회적 폭력에 대한 신경질적인 저항으로부터 인간의 위선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정지된 시간을 현재로 불러내 그 결빙의 사슬을 푸는 작업으로부터 익명의 개인에게 바치는 헌사에 이르기까지 그는 언제나 한 곳에 머무는 것을 거부하며 변화를 시도해 왔다. 그 과정에서 조형적인 방법도 정체(停滯)를 거부하고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그 지칠 줄 모르는 악마적 상상력과 지구력은 안창홍이란 작가를 한정된 언어로 규정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러나 안창홍이야말로 위험하면서 독창적인 작가라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 그는 여전히 불가해한 존재이다. 어쩌면 그것이 그와 나를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끈인지도 모른다.
   불편함의 성공 - 안창홍의 대형 흑백 누드/ 성완경 [6]
   얼굴과 몸, 유령들 그리고 화가의 생애에 관한 얘기/성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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