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 똥







안창홍 평론모음
AHN CHANG HONG ' CRITIC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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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으로 기록한 처절한 아름다움/최태만글(미술 평론/국민대교수) 2015/02/24
고통으로 기록한 처절한 아름다움

안창홍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도록 뒤쪽의 여백에 ‘맨드라미의 꽃봉오리는 검붉은 물감덩어리이자 짓이겨진 육질이고, 폭발하는 장기(臟器)이다’라고 적었다. 29번째 개인전 개막을 앞둔 11월 15일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작가노트에서 “내 눈에 의해 관찰된 맨드라미는 느낌이 식물이라기보다는 동물에 가깝다. 마치 정육점 진열장의 붉은 조명등 아래 놓인 살코기 같은 느낌! 꽃의 형태 대부분이 좌우가 비대칭이고 괴이한 데다 원초적 느낌의 현란하고 강렬한 붉은 빛, 질긴 생명력이 느껴지는 다양한 모양의 억센 줄기와 다양한 색의 잎들. 온 몸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듯이 시들어갈 때의 처연함. 망연자실, 꽃이긴 한데 꽃이 아닌 듯한 느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그림 속의 꽃들은 실핏줄처럼 엉겨있는 줄기와 가지 위로 솟구치는 에너지가 응고된 곳에서 요염하면서도 강인하게 몽우리를 피우고 있다. 선명한 원색의 물감덩어리가 도도하게 짓이겨진 꽃은 화려하면서 처연하다. 그래서 대지에 낭자하게 뿌려진 선홍빛 피가 그대로 굳어버린 듯한 그의 그림은 처절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정서적 긴장, 즉 처절한 아름다움은 그가 단지 자연을 재현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식물을 동물로, 붉디붉은 빛깔의 꽃을 살코기로 표현한 것은 모두 죽음과 연결된다는 된다는 점에서 그의 그림은 죽음의 비유이자 환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화려하게 만개했지만 왠지 쓸쓸하거나 혹은 아예 시들어 말라버린 안창홍의 꽃밭은 풍경이라기보다 정물에 가깝다.

서구미술에서 정물화는 ‘여전히 살아있는(still-life)’이란 뜻을 지니고 있으나 동시에 ‘죽은 자연(natura morta)’이란 의미도 담고 있다. 특히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전한 정물화 속의 활짝 핀 꽃은 언젠가는 시들기 마련이고 자신을 태우며 어둠을 밝히는 촛불도 곧 꺼져버릴 운명이며, 투명한 유리잔도 깨질 것이고 거품은 허공중으로 사라질 것이므로 부귀영화와 같은 세속적 욕망은 물론이거니와 삶조차도 덧없음(vanitas)을 상징한다. 대체로 이 그림들은 이러한 대상들을 통해 삶의 허망함을 일깨움으로써 ‘죽음이 항상 네 옆에 있으니 기억하라(memento-mori)’란 교훈을 담고 있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삶에의 욕망(eros)과 죽음의 충동(tanathos)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한짝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창홍도 죽음 자체만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농염한 개화의 절정을 그린 것일까? 이번 전시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그 길이만 10미터가 넘는 세 개의 꽃밭풍경을 연결한 작품이다. 화려하고 농염한 빛깔을 자랑하는 다른 그림과 비교해 볼 때 이 작품은 꽃밭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생성과 소멸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삶의 순환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 앞에 놓인 보라색의 커다란 두상은 그의 작품이 단지 삶의 덧없음에 대한 경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함의를 지니고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그는 이 입체작품의 제목을 사람의 피를 먹고사는 좀비의 세상을 다룬 영화제목으로부터 따와 <눈먼 자들의 도시>라고 붙였다. 물론 전시장이나 도록에서도 그 제목을 발견할 수는 없지만 꽃밭으로 둘러싸인 이 보라색 두상은 그의 작품에 담긴 수수께끼와도 같은 의미를 푸는 열쇠와도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안창홍은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어김없이 나를 호출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환장을 받은 사람마냥 그의 작업실로 출두해야 한다. 덕분에 나는 이 꽃밭작업의 시작부터 볼 수 있었다. 그것도 부족한지 내가 작업실을 다녀온 후에도 그는 SNS 문자메시지를 통해 작업과정을 사진과 함께 꼭 보고를 한다. 2014년에 보낸 문자만 보자. 4월 2일 그는 ‘안창홍의 정원’이라 이름붙인 첫 작품을 보내왔다. 그리고 작업에 대한 글보다 한국사회를 고통에 빠뜨린 긴 시간을 보내어야만 했다. 그의 문자는 대체로 침몰한 세월호에 대한 정보나 심경을 토로한 짧은 글로 채워졌다. 그리고 한참동안 작업에 대해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더니 6월 20일에는 210호 크기의 유화 <검은비>를 완성했음을 알려왔다. 7월 20일에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을 생각하며 그린 작품과 함께 풍경과의 오버랩이 쉽지 않다는 글을 보내왔으나 7월 30일에는 드디어 이 작품을 완성했음을 알려왔다. 그리고 이 작품을 꼭 봐야한다며 작업실 방문을 독촉했다.

그의 출두명령을 받고 간 작업실에서 한 무더기 맨드라미가 뒤엉긴 그 작품을 봤다. 좌우로 평행으로 맨드라미가 두 그루씩 쓰러져 있고 화면의 중심에는 맨드라미 군락이 한 몸처럼 뒤엉겨있는 이 작품은 그 구조에서나 분위기에서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전면으로 돌출된 꽃에 비해 평면으로 처리하여 원근을 파괴한 배경은 작품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훗날 전시를 개막할 즈음  조선일보 김미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그것에 대해 ‘구도의 도발’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의도적인 구도의 해체는 안창홍이 정물 같은 풍경을 위한 연출 즉, 연극이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미장센(mis-en-scene)이란 점에서 작품에 담긴 비유와 환유, 그리고 상징을 감추면서 드러내는 수사이기도 하다.

나로서는 고야가 그린 <1808년 5월 3일>에 대해서 미술사 서적보다 홋타 요시에(堀田善衛)가 방대한 자료조사와 소설가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쓴 고야 평전 번역본을 통해 더 재미있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야는 이 작품을 사건이 일어난 지 육년 후인 1814년에 그렸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통합한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나폴레옹이 보낸 프랑스군에 맞선 마드리드 시민들의 봉기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 경비병부대가 봉기에 참가했거나 검문 중 조그만 칼이라도 소지한 사람이라면 모조리 잡아다가 프린시페 피오 언덕에서 처형하는 장면을 그린 이 작품은 겉으로 볼 때 선과 악이 분명하게 나뉘고 있다.

잔인한 처형 앞에 무기력한 시민들과 비교할 때 표정을 감추고 있는 프랑스 경기병들은 살인기계로 표현돼 있다. 더욱이 화면 속의 흰색 셔츠를 입고 두 손을 치켜든 남자의 손에 못자국과 같은 상처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예수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고야는 이 그림과 함께 5월 2일에 일어난 스페인 시민들의 봉기도 그렸다. 마드리드 시민들이 프랑스 군에 소속된 이집트인 지휘관이 이끄는 용병부대와 뒤엉겨 싸우고 있는 이 작품에서는 선악의 경계도, 위대한 영웅도 없다. 혼란스럽고 산만한 구도는 이 혈전의 잔인함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사실 대부분의 전쟁화는 전투의 참혹함을 승리한 자의 용맹을 과시하기 위해 전투의 끔찍함을 왜곡한다. 고야는 불과 하루 사이에 일어난 두 사건을 왜 이토록 다르게 그렸을까. 고야는 5월 3일의 사건을 목격하지 않았고 훗날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참고해 <1808년 5월 3일>을 그렸다. 그 뒤에는 누구보다 생존본능이 강했던 고야의 정치적 고려도 작용했지만 또 한편으로 당시 유럽과 스페인의 복잡한 정치에 대한 그의 의식도 작용하고 있다. 그때까지 스페인은 종교재판이 존재하고 있었고, 나폴레옹이 그것을 금지하자 스페인 교회는 스페인인들로 하여금 나폴레옹에 반대해 봉기할 것을 사주했다. 반면에 왕정과 교회의 무능과 억압에 지친 스페인인들은 프랑스가 혁명의 이념을 전파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스페인인들은 프랑스군이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임을 깨닫고 저항했다. 이러한 복잡한 정치적 구조 속에서 고야는 프랑스군이 떠나고 페르디난도 7세가 복권한 후인 1814년 의회에 청원하여 왕의 재정지원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다.

고야는 <1808년 5월 3일>에서 희생자를 순교자로 표현하고 있으나 스페인왕정은 자취도 없고, 교회조차 더 이상 시민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을 포착했다. 따라서 그림 속에서 전통적인 기독교미술의 구원이나 부활을 발견할 수는 없고 잔혹한 살육만 강조되고 있다. 고야의 작품에서 강조된 야만과 폭력의 섬뜩함이 안창홍의 작품에서 맨드라미의 핏빛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내가 작업실을 다녀간 후인 8월 23일 그는 90% 완성했다는 소식과 함께 시들어가는 맨드라미 꽃밭을 통해 가깝게는 우리나라, 멀게는 지구촌의 절망과 슬픔을 이야기한 <안창홍의 뜰, 개 같은 여름>이란 작품의 이미지를 보내왔다.(도록에는 이 제목들이 모두 빠졌고 단지 ‘뜰’이란 애매하고 중성적인 제목만 붙어있다.) 다시 안창홍의 작업노트로 돌아가 보자. “2014년은 나에게 가혹한 해였다. 아프가니스탄 아이들의 무차별적인 학살, 여객기피격으로 사망한 259명의 사람들, 이라크 내전, 슬픈 아프리카 빈국들의 끝없는 전쟁과 살육, 에볼라로 사망한 5000여명의 사람들, 전 세계를 수렁으로 내몰고 있는 이 모두가 피도 눈물도 없는 약육강식의 경제논리가 모든 가치의 우위에 있는 광기와 탐욕의 결과물들이 아닌가! 그리고 잊혀질까 두려운 세월호 사건.”

그렇다. 4월 16일 이후 한국은 깊은 절망의 수렁 속에 잠겨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여름이 지나갔지만 진전은 없었고, 10월 말 생일을 맞은 황지현 양의 시신이 인양되었다. 그러므로 안창홍의 풍경 같은 정물은 죽음이 네 옆에 있을지니 항상 그것을 기억하란 보편적인 경구가 아니라 죽음 앞에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와 고통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안창홍은 이년 전부터 작업실 앞마당에 작은 꽃밭을 일구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꽃을 통해 자연과 투쟁하며 살아남기 위해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인간의 삶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그것은 어쩌면 안창홍 자신의 모습을 꽃을 통해 투영하려는 욕망의 발로일 것이다. 그러다 그는 자신의 뜰에서 맨드라미를 발견했다. 돌담 밑이나 장독대 부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그 꽃이다.

맨드라미의 학명은 셀로시아 크리스타타(Celosia cristata)로서 린네가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셀로시아는 그리스어로 불타오르다는 의미를 지닌 ‘켈로스(κηλος)’로부터 파생한 것으로서 꽃봉오리 모양이 불꽃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그래서 맨드라미의 꽃말도 ‘불타오르는 사랑’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안창홍의 맨드라미는 죽은 자연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분노를 불태우며 부활하는 살아있는 자연(natura viente)은 아닐까. 그는 “예술은 규범과 단정의 부산물이 아니라 모호함과 불안함과 갈등의 긴장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라야 더욱 아름답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이 나에게는 처절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안창홍, 눈먼 자들 /최태만/미술평론가
   삶의 폭력성을 보는 두 시선/성완경(작가, 인하대 미술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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