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홍 ' 똥







안창홍 평론모음
AHN CHANG HONG ' CRITIC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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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폭력성을 보는 두 시선/성완경(작가, 인하대 미술과 명예교수) 201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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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사람아≫ 전시장의 여기 저기 거대한 파노라마 화면 속에서 함께 엉켜있거나 혹은 각각의 화면 속에서 따로따로인 인간 군상은 좀 특별하게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예사롭지 않은 대면이랄까. 뭔가 충격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얼굴들이 있고 그것들이 불러내는 우리의 삶과 역사 혹은 우리 존재와 욕망, 몽상의 환기가 있다. 강하고 생생하거나 혹은 야릇하고 불편해서 일단 그것을 리얼리즘의 충격이란 말로 형용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보통 사람의 집단적, 개인적 역사 혹은 서민의 역사요 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점을 말하기 전에 그것들이 우리를 사로잡는 방식의 특이함에 대해 먼저 주목해보자. 내가 우선 주목하고 싶은 것은 사진 이미지가 뿜어내는 영기(靈氣) 비슷한 그 무엇이다. 신학철과 안창홍 이 두 작가의 작업은 모두 사진 이미지를 기반으로 한 작업이다. 그리고 그 점이, 곧 사진적 이미지란 점이 바로 이 강력한 영기를 만들어내는 ‘사태’의 핵심에 자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이미지라는 이름의 귀신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내가 귀신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그것이 실재가 아닌데도 실재처럼 우리를 사로잡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실을 대체하기도 하고 죽은 것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미지 문제의 저 밑바닥에는 사진의 본질, 죽음, 에로티즘, 폭력 등의 이슈가 가로 질러 있다. 이 사태의 이해 없이 신학철과 안창홍의 회화를 제대로 얘기하기는 어렵다.

신학철의 작업은 ~~~(중략)


2.
삶의 폭력성은 안창홍의 작업에서도 중요한 주제다. 안창홍은 드로잉, 유화, 사진, 오브제, 설치 등 다양한 표현매체를 이 주제를 다루어왔다. 특히 그의 작업에서 사진의 사용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사진에 대한 안창홍의 관심은 오래 되었다. 안창홍이 79년에서 82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그린 흑백의 <가족사진>연작이 있다. 가족사진을 캔버스에 옮겨 그린 것인데 이 연작에서 안창홍은 초상 속 인물들의 눈을 모두 검게 뚫고 입을 벌어지게 만들고 화면에 긁힌 자국이나 흠집이 나게 만들었다. 이것들은 지금 봐도 대단히 힘이 있고 깊은 정서적 울림을 준다. 안창홍의 이 시기 이후의 80년대 작품들에도, 이를테면 해부대 위에 부서진 인형, 해골, 허수아비, 화살을 맞거나 목이 졸린 새의 주검, 히비쿠샤(원폭피해자)의 가면, 가시에 찔린 얼굴 등, 참혹하고 소외와 불안, 공포와 황폐함을 느끼게 하는 형상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 형상들의 기원에 <가족사진>연작이 있다. 특히 <가족사진>연작 중 얼굴을 가면과 허수아비들로 표현한 것들이 그것들이다. 대체로 그의 작업 속에서 이 세계는 고통을 주는 자와 고통을 받는 자 간의 구도로 읽힌다. 그리고 작가는 그 세계의 한구석에서 그 비극을 늘 엿보고 확인하면서 역사나 인간이라는 것의 그 왜소한 규격에 대해, 그 폭력과 황폐함에 대해 증오로 맞서고 침뱉기를 서슴지 않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 이처럼 ‘가족사진’은 그의 개인적 삶과 우리의 근대사 양쪽에서 삶의 폭력에 관련된 강열한 심리적 울림을 촉발하는 인자이며 또한 오늘에까지도 그의 작업의 심층에 걸려 있는 주술을 엿보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안창홍에게 얼굴이나 초상은 무엇이었을까? 사진은 그에게 무엇일까? 안창홍은 왜 사진과 얼굴, 가면 등에 집착하는 것일까. 안창홍은 한 작업노트에서 “오래된 한 장의 기념사진은 딱딱하고 건조한 사실과 기록을 뛰어넘어 독립된 서정과 주술의 매개물로 존재한다. 사진은 그 속에 갇힌 개인사적 시간과 사연을 뛰어넘어 사진 자체로서의 독립된 사회성을 갖는다. 그 독립된 에너지의 매혹 때문에 나는 사진에 이끌린다”(2007년 9월 3일 작업노트)고 밝힌 바 있다. 이것은 그의 작업에서 빈번한 사진 이미지의 사용의 본질적 속성이 무엇인가를 매우 잘 설명해준다.
안창홍은 자신의 가족사진 외에도 그가 수집한 많은 익명의 사진들을 작품에 활용한다. 그것들은 골동가게에서 수집한 것이나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수집한 사진들인데 50년대 사진이 주종을 이룬다. 대략 5,60년 전 사진들이다. 그는 이 사진들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용한다.

전부 49점의 초상화로 이루어진 <49인의 명상>은 어떤 달동네의 폐업한 사진관의 증명사진 음화 뭉치에서 태어난 작품이다. 우연한 기회에 그 음화 뭉치가 작가의 수중에 들어왔고 작가는 그 당시 받아두었던 수많은 음화 가운데 일단 100점을 무작위로 골라 가로 70cm, 세로 100cm 크기로 확대 인화를 주문했다. “며칠이 지난 후 사진을 받아든 순간, 조그만 증명사진용 네거티브 이미지로는 상상조차 해볼 수 없었던 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각양각색인 주변 사람들이 낯익은 얼굴들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공통의 정서 속에서 제각각 다른 형태로 삶의 질곡을 어깨에 매달고 있었다. 그 박제된 시간의 느낌은 주술의 힘을 발휘하여,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이 생경한 시적 영감 속으로 나를 데려갔다.”(작가 노트) 안창홍은 그것들을 벽에 나란히 붙여놓고 오랜 동안, 몇 날, 몇 달, 그리고 해가 바뀔 때까지 오랫동안 바라보며 지냈다. 그러다가 얼마 후 49점의 반신상 초상이 지금 보이는 형태로 다시 태어났다. 안창홍은 자신이 의도한 작업의 핵심이 “이 사진의 주인공들이 실재했던 시간을 과거와 현재의 틈 사이에 놓는 것”이었으며 그 틈은 “존재와 부재의 틈, 삶과 죽음의 틈, 소멸된 시간과 현재의 틈, 언젠가 그들이 살았던 그 곳과 빛바랜 사진 속의 박제된 시간의 틈”이었다고 말한다(안창홍 작가 노트). 안창홍은 붓으로 리터치해 사진 속 주인공들의 눈을 감겼다. 그리고 그것들을 직사각형 철재 프레임 속에 투명 에폭시 수지로 두껍게 덮었다. 주인공들은 명상에 잠긴 것 같기도 하고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한 모습이다. 때로 그 시간 속으로 나비가 날아들기도 하고 입술이나 뺨에 홍조가 스치기도 한다.

안창홍은 이번 『사람아 사람아』 전시회의 자기 파트를 묶는 전체 주제가 '아리랑'이라고 말한다.  이 명제는 안창홍이 작년 말 강남의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에서 공식적으로 쓴 것이다. <아리랑>은 <가족사진>시리즈와 그 이후의  <49인의 명상> 연작(2004)과 <사이보그>와 <사이보그의 눈물>, 그리고 <얼굴>과 <부서진 얼굴> 연작(2006-2007), <봄날은 간다> 연작(2007) 을 다 포괄한다. 주변부 생명체들의 소멸을 다룬 <자연사 박물관> 연작(2002)더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결국 '아리랑'은 초기의 <가족사진>시리즈 이후 7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업 전체 곧 생애적 프로젝트를 묶는 이름이다.

안창홍 작업의 생애적 지속성 속에는 그가 '죽음'을 다루는 특별한 방식도 포함된다. 안창홍의 작품세계에서 ‘죽음’은 생애적 주제라고 할 만큼 지속적으로 다루어져왔다. 가족의 와해와 역사의 상처를 그린 위에 언급한 <가족사진> 연작 외에도, 시간의 덧없음을 표현한 <봄날은 간다> 연작(2007), 주변부 생명체들의 소멸을 다룬 <자연사 박물관> 연작(2002), 인간 존재의 슬픈 묵시록인 <사이보그의 눈물> 연작이 모두 죽음에 연관되어 있다. 그는 이미지를 매개로 하여 죽음과 기억과 금기, 시간과 욕망 등의 상호관계를 탐색하는 데에 지속적 관심을 보여 왔다. 기억과 망각을 중첩시키고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탐색하면서 그리고 나아가 죽음에 관련된 금기와 위반의 경계선을 교란하면서 안창홍은 죽음의 문제를 욕망과 아름다움의 차원에까지 근접시키려는 시도를 언뜻언뜻 내비치고 있는 감이 있다. 죽음을 심미화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똑 같은 익명적 서민들이라 하더라도 신학철 작품의 인물들은 시학보다는 사회과학의 영역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농부, 노동자, 중산층 등 사회적 · 계급적 신원 확인이 가능하고 역사적 · 정치적 권력과 폭력의 역학장 속에 놓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신학철이 보다 공공적 형식으로 집단의 역사를 호명해낸다면 안창홍은 보다 사적인 형식으로 역사에 가려진 개인을 호명한다. 신학철은 삶의 폭력을 다루며 그 조형언어는 몽타주와 초현실주의가 한데 얽힌 충격의 언어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를 큰 덩어리로 다룬다. 같은 사진 이미지에 기반한 작업이지만 안창홍은 그 역사에 가려진 개인을 그리고 가족, 사회 등 인간관계 속에 깃들어있는 상처를 그려왔다. 그의 80년대, 90년대 작업에 주변부적 인간들(부랑아, 창녀, 호색남, 동성애자, 여장 남자, 유한마담, 권력자, 양아치, 어른을 닮은 어린이 등)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선 또한 공공의 윤리와 허위의식에 대한 도발, 정치와 권력에 대한, 천민적 욕망에 대한 냉소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기념사진과 쌍 파리채들>(1995)은 태극기를 배경으로 한 한국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직원 일동의 기념사진을 대형 확대하여 그 위에 가필한 작업인데 인물들이 모두 검은 안경을 쓰고 있고 붉은 플라스틱 파리채를 들고 있다. 좌파건 우파건 가리지 않고 안창홍은 역사와 그것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은연 중 표출한다.

이런 관점의 차이는 두 작가가 도시와 도시인의 삶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보이는 것 같다. 신학철이 도시의 외경을 그린다면 안창홍은 도시의 내경을 그린다. 안창홍이 90년대 중반과 90년대 말 사이에 그린 <오렌지빛 청춘>(1994), <유혹>(1996), <풀잎사랑>(1998), <혀와 혀>(1999)로부터 2000년대 초의 <시선>연작(2002) 등은 그 도회적 내경 속의 보통사람들의 일상에 가까이 접근하여 욕망과 시선의 문제를 보여주는 도회 풍속도 같은 그림들이다. 이것들은 좀 까발리는 듯한 밝고 도발적이며 생기 있는 그림들이다. 이 작품들이 이 전시에 나오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지금 이 전시의 주종을 이루는 것은 2004년-2006년경 제작한 <49인의 명상>과 <사이보그의 눈물> 연작들 그리고 그 이후로 이어지는 <부서진 얼굴> 연작과 <봄날은 간다> 연작, <기념사진> 연작들 등 대체로 모두 수집한 사진에 기반한 작업들이다. 이 작업들은 앞 작품들에 비해 좀 우울한 작품들이다. 그것들은 비애, 고독, 광기, 저항 등에 집착하던 80년대의 우울과 연장선에 있는 그림들이란 느낌이 든다.

안창홍은 그 후 2008년 이후 <베드 카우치>연작을 비롯한 대형 인물화를 여럿 그렸다. <베드 카우치> 연작은 강력하고 매혹적이며 그리고 어떤 기이함과 긴장이 있는, 일종의 파열과 불편함이 있는 작업이다. <베드 카우치> 연작은 소재와 형식은 분명 누드화라는 장르의 것인데 그 장르의 기본 코드(포즈, 인테리어와 소도구, 분위기 등)를 철저히 뒤엎거나 위반하고 있다. 인테리어는 화가의 작업장 상황인데 거의 폐공장 수준이다. 더럽고 어지럽혀진 바닥 그 한가운데 베드 카우치가 놓여 있고 인체가 그 위에 얹혀 있다. 베드 카우치라는 이 소품과 인체의 관계는 그 자체가 포르노이리만큼 불편하고 ‘부적절’하고 생뚱맞다. 한마디로 불편하다. 게다가 전체적 미장센을 보면 극도로 장식이 배제된 대단히 즉물적 상황이다. 단지 화가의 작업장이라는 그 ‘여기, 지금’의 극도의 썰렁한 상황이 있을 뿐이다. 모델들의 모습은 즉자적, 즉물적으로, 그리고 또한 건축물처럼 무겁고 장엄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들의 모습과 정면 응시의 시선에서는 포르노적이라든가 관능적이라는 것을 뛰어넘는, 애초에 그런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당당함과 숭엄함 같은 게 있다. 그리고 육체 자체가 각자의 사회적 삶의 스토리를 뿜어내는 느낌을 준다(졸고, '불편함의 성공 - 안창홍의 대형 흑백 누드'에서 일부 인용, 『아트인컬처』 2009. 10).

삶은,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살아낸다는 것’에 다름 아닌 경우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삶 자체가 투쟁인지도 모른다. 삶은 투쟁, 곧 폭력인 것이다. 신학철과 안창홍이 그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삶의 폭력성이다. 혹은 폭력으로서의 삶이다. 그것이 사회적인 것이거나 개인적인 것이거나 말이다. 신학철의 갑돌이와 갑순이나 안창홍의 ‘49인’들이나 가진것, 배운것 별로 없는 서민들임에 분명하고 서민의 삶이란 것이 생존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언제든지 가진 것, 배운 것 많은 이들의 가장 쉬운 먹잇감이 되기 쉬운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자본 본위의 사회구조 속에서 물질적 기반이 없는 소위 ‘서민’의 삶이란 것이 실은 얼마나 불안하고 위태로운 것인가를 보여주는 가장 가까운 예로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이 있다. 그들도 서민이었다. 그날이 있기 전까지 그들도 평범한 시장 안 상인들이었다. 그러나 자본이 지닌 폭력성 앞에 그리고 자본의 편에 서는 국가 폭력 앞에 그들의 평범한 삶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그들이야말로 이 시대 갑돌이와 갑순이요, 안창홍의 ‘동네 사진관에서 차려입고 사진 한 장 박은 49인들’에 다름 아닌 것이다. 삶의 막다른 길에 내몰린 갑돌이와 갑순이들은, 49인으로 상징되는 장삼이사들은 그리하여 지금, 이순간도, 삶이라는 폭력 앞에 대치 중이다. 얼굴 없는 얼굴로 방아쇠를 당기거나 문신한 알몸을 드러내고 삐딱한 시선을 건네면서. 혹은 눈을 감거나 차라리 죽음으로서.
   고통으로 기록한 처절한 아름다움/최태만글(미술 평론/국민대교수)
   <발:견/發:見/micro:scope>/ 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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